신재 한상경 영정(信齋 韓尙敬 影幀)
1382년(우왕 8) 문과에 급제하여 예의좌랑, 우정언, 종부령을 거쳐 1392년(공양왕 4) 밀직사우부대언(密直司右副代言)에 승진하였고, 이 해에 이성계가 개국하자 추대의 공으로 익대개국공신(翊戴開國功臣) 3등에 책록되었다. 1396년(태조 5)서원군(西原君)에 봉해지고, 1399년(정종 1)에 경기좌도 도체찰사가 되었다가, 태종 때에는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 영의정에 이르렀다. 그의 인품은 늘 청백하였고 사람을 기용하는 데 공정했으며 검소한 생활을 했다고 하며, 글씨를 잘 썼다고 한다. 한상경 영정의 작화 계기는 개국공신으로 책봉되어 왕명에 의해 그려진 것으로 보이나, 이 화폭에 남아 있는 이경석(李景奭)의 「화상찬(畵像贊)」을 보면 “璘工重模, 倣寫于眞(인공중모, 방사우진)”이라는 구절이 있어, 이 상은 원본인 개국공신상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