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월출봉 출토 사리장엄구는 강원도 금강산 월출봉에서 출토된 고려 시대 사리구이다. 2017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사리구는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 직전에 발원하여 봉안한 것이다. 사리는 유리제 기물에 넣었고 사리 내함과 사리 외함은 은제도금으로 되어 있다. 사리 내함의 양식은 중국 티베트 불교의 영향이 반영되었다. 사리구 일부 유물에 명문이 있어 제작 시기와 시주자 및 제작자 등을 알 수 있다. 이 사리구를 통해 조선 건국 직전의 사회적 배경과 불교 신앙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사리구는 원래 석함에 안치된 것으로 전하지만 현재는 금속과 백자로 구성된 기물만 남아 있다. 은제도금 팔각당형 사리기, 은제도금 탑형 사리기, 유리제 사리기, 청동발 등이 있고 백자발 4점과 백자향로 1점도 포함된다. 일부 유물의 내외 면에 명문이 있어 제작 시기와 시주자 및 제작자 등을 알 수 있다.
사리는 유리제 기물에 넣었고 사리 내함인 은제도금 탑형 사리기는 티베트계 불탑인 라마탑의 모양을 따른 기형이며, 외함은 팔각당형으로 제작되었다. 고려시대 말부터 조선 초기에는 육각당이나 팔각당의 형태, 또는 라마탑형 사리기를 봉안한 예가 자주 발견된다. 중국 원대(元代)에는 티베트 불교 신앙이 유행하였는데, 고려 후기 양국의 교류가 긴밀해지면서 불교 미술품 제작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
사리구 가운데 일부 유물에는 명문이 있다. 유리제 사리기를 감싸는 은제 원통 외면에 새겨진 음각 글씨(奮忠定難匡復燮理佐命功臣壁上三韓三重大匡守門下侍中李成桂 三韓國大夫人康氏 勿其氏)를 통해 이성계와 둘째 부인 강씨가 제작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백자발 2개와 은제도금 팔각당형 사리기, 청동발에는 각각 1390년과 1391년의 기명(記銘)이 있어, 사리구의 제작 시기를 알 수 있다. 또한 “금강산 비로봉 사리안유기(金剛山毘盧峰舍利安遊記)”를 통해, 원래는 비로봉에 봉안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사리기 각각에 새겨진 명문 중에는 이성계의 주변 인물이 발원자로 다수 기록되어 있어, 조선 건국 직전에 지지 세력을 규합하고 새로운 왕조 건립에 뜻을 모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백자 유물 중에 “신미 4월 일 방산 사기장 심룡 동 발원 비구 신관(辛未四月日 防山砂器匠沈竜 同發願比丘信寬)”이라는 기록도 주목된다. 방산의 사기장 심룡이 만들었다는 내용으로, 제작된 지역과 장인의 이름이 언급된 것이다. 방산(方山)은 백자의 원료인 질 좋은 백토가 산출되는 곳으로 유명하며, 현재 강원도 양구 방산이라는 주장이 많지만 양구가 아닌 다른 지역이라는 견해도 있다.
사리장엄구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이어지는 시대적 변화 속에서 제작되었으며, 명문을 통해 제작 시기, 봉안 장소, 발원자, 지역, 장인 등 다양한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특히 이성계를 중심으로 조선을 건국하기 직전의 사회적 배경과 불교 신앙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중국 원대 티베트 불교의 영향이 반영된 사리기의 제작은 새로운 양식의 유입과 변화를 알려 주며, 함께 출토된 백자 유물은 조선시대로 이행되는 자기의 발전 과정을 고찰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