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금귀걸이는 삼국시대 고분에서 다수 출토되는 금속제 장신구의 일종이다. 출토지는 분명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며, 현재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되어 있다. 경주 보문동 부부총에서 발견된 귀걸이와 유사한 외형과 장식을 갖추고 있어, 신라의 유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 고분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귀걸이가 출토되며, 보통 고리 부분의 굵기에 따라 태환이식(太環耳飾)과 세환이식(細環耳飾)으로 구분한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은 귀에 거는 고리가 굵은 태환이식에 해당된다. 요즘의 귀걸이에 비해 고리가 매우 굵기 때문에 실제 사용하지 않고 부장용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굵고 큰 귀걸이를 매다는 풍습이 고대 여러 지역에서 일찍부터 발달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실용품일 가능성도 높다.
귀걸이는 굵은 고리와 연결 고리, 작은 고리로 연결된 수식(垂飾), 그리고 심엽형의 끝 장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굵은 고리는 금판을 둥글게 말아 속이 비도록 만들며, 연결 부분은 땜으로 붙인다. 표면에는 수백 개의 금알갱이와 금선을 이용하여 육각을 구획하고 문양을 장식하였는데, 이러한 공예 기법을 누금세공(鏤金細工)이라고 한다. 육각의 모서리에는 원문이 있고 문양의 둘레마다 금알갱이를 조밀하게 붙여 놓았다. 수식은 금줄을 꼬아 둥글게 만든 후 2단으로 심엽형의 영락을 매달았으며, 끝 장식은 좀 더 큰판으로 만들어 연결하였다. 수식의 테두리에서도 섬세한 누금 장식이 확인된다.
누금세공 기법은 기원전 3000년경 서아시아 지역에서 시작되어, 기원을 전후한 시기에 동아시아로 전파되었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에 유행하여, 귀걸이 · 팔찌 · 반지 등의 장신구를 비롯한 다양한 기물의 표면 장식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경주 보문동 부부총의 부인묘에서 출토된 금제 태환이식에서도 우수한 누금세공 기술이 확인된다.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품과 비교해 보면, 전체적인 형태와 세부 장식이 상당히 유사하다. 삼국시대 고분에서 귀걸이가 다수 출토되었지만 두 유물과 같이 태환이식의 전면에 누금세공으로 호화롭게 장식한 예는 많지 않다. 금속 공예의 정수를 보여 주는 최상위 계층의 유물로 판단된다.
굵은 고리 귀걸이인 태환이식은 주로 고구려와 신라 지역에서만 출토되고 있어, 금속제 장신구의 제작과 영향 관계를 고찰하는 데 중요한 유물이다. 기형이 아름답고 정교한 세공 기술로 제작되어,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공예품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