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사명 사리구 ( )

계사명 사리구
계사명 사리구
공예
유물
국가유산
조선 후기 계사년 명문이 있는 사리구 일괄유물.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계사명 사리구(癸巳銘 舍利具)
분류
유물/불교공예/기타/기타
지정기관
부산광역시
종목
부산광역시 시도유형문화유산(2012년 10월 30일 지정)
소재지
부산광역시 서구 구덕로 225 (부민동2가, 동아대학교석당박물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 계사년 명문이 있는 사리구 일괄유물.
개설

경상남도 울주군 웅촌면 대복리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하는 사리구 일괄유물로, 백자 외합과 금속제 원형 합 2점, 금속제 원통형 사리기 등 네 점으로 구성되었다. 2012년 10월 30일에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내용 및 특징

사리구는 백자로 만든 외합과 2점의 금동 원형합 그리고 금동 원통형 사리기로 이루어져 있다. 기물의 형태가 원형 또는 원통형 합이면서, 특별한 장식이 없는 사리구는 조선 중기 이후의 유물로 다수 출토되었다. 또한 백자의 사용이 점차 늘어나면서, 사리 외합을 자기로 제작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백자 외합의 몸체 중간에는 청화 안료로 쓴 명문이 남아있다. “계사년 2월에 시주자 승표 부부가 발원하여 제작하였다[계사이월일 시주승표양주(癸巳二月日施主承表兩主)]”는 내용이 세로로 3줄에 걸쳐 쓰여 있다. 간지(干支)만 있기 때문에 명확한 조성 연대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사리구의 재질과 형태로 볼 때 조선 중기 이후의 유물로 추정할 수 있다. 백자의 제작 수준이나 사리구의 세부 특징을 고려하여 계사년을 1593년(선조 26) 혹은 1653년(효종 4)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의의와 평가

원형 또는 원통형 합의 형태와 백자 외합의 사용은 조선 중기 이후 크게 유행하는 사리장엄 방식이다. 계사명 사리구는 시대 양식을 반영하고 있으며, 명문을 통해 조성시기를 추정하고 발원자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선시대 불교 공예품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부산의 문화재』(부산광역시 문화재예술과, 2013)
『불사리신앙과 그 장엄』(통도사성보박물관, 2000)
부산광역시청(www.busan.go.kr)
국가유산청(www.cha.go.kr)
관련 미디어 (1)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