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에 도금하여 만든 신발로, 현재 도쿄[東京]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일본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정식 발굴 조사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출토지가 분명하지 않지만 경상남도 창녕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에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 1870∼1964)가 수집한 한국 문화재(현, 국가유산) 가운데 일부이다.
금동투조식리는 앞과 뒤, 바닥 등 3매의 판으로 구성되어 있고 얇은 동판에 도금하여 만들었다. 앞판은 발의 끝부분을 감싸고 뒤판은 발꿈치 부분에 해당하며, 발의 좌우측 중심에서 양판이 못으로 고정된다. 이러한 제작 방식은 좌우 측판을 발등에서 접합하는 백제의 금동신발과 구별되는 점이다. 바닥에는 둥근 달개[영락(瓔珞)]를 금실로 엮어 매달았는데, 고구려나 백제의 신발 바닥에 못이 박혀 있는 것과 다른 모습이다. 신발코는 버선처럼 살짝 들렸으며, 신발 바닥판과 코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면에 T자 문양을 투조하였다. 이처럼 투각 기법으로 장식한 신발은 황남대총, 금관총, 천마총, 의성 탑리 등에서도 출토되었으며, 바닥에 달개 장식을 매단 것으로는 대구 서구 내당동 제55호분 출토품이 알려져 있다.
금동제 신발은 왕족이나 귀족, 또는 지방의 수장급 인물의 무덤에서 자주 출토된다. 묘주가 신고 있는 상태로 발견되기도 하지만 별도의 공간에 매납한 경우도 있다. 대체로 신발이 크고 화려하게 장식되어 지배 계층의 신분과 권위를 상징하며, 장례와 관련된 부장품으로 추정된다. 오구라 수집 금동투조식리는 신라의 전형적인 양식을 공유하고 있으며, 고구려와 백제의 유물과 비교할 수 있는 점도 많다. 따라서 삼국시대 고분 문화와 금속 공예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