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백령(吳百齡)
1594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에 뽑혀 사관(史官)이 되었고, 이어 정언(正言), 예조와 병조의 좌랑, 재령군수·응교(應敎)·사인(舍人)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광해군 때 동부승지가 되어 복천군(福川君)에 봉하여졌으며, 천추사로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하였다. 여러 참판을 거쳐, 1618년(광해군 10)에 폐모론의 정청(庭請: 세자, 또는 삼정승이 백관을 거느리고 궁궐에 대사(大事)를 알리고 임금의 명을 기다림)에 참여하지 않았다가 파직되고, 성밖에 은거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형조참판에 기용되고, 이어 도승지·대사간·이조참판·성균관대사성 등을 역임하였다. 이괄(李适)의 난 때에 왕을 공주에 호종한 공으로 승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