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동
1921년 5월 북경 군사통일책진회(軍事統一策進會)에 참석하는 등 독립운동을 계속하였고, 1922년 10월 귀국하여 국외로 무기수송을 비롯한 구국항쟁과 군자금모금에 나섰다가 이듬해 7월 3일경상북도 칠곡 송림사 근처에서 일본경찰에 잡혀 이듬해 11월 대구법원에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광복 이후 1948년 5·10총선거 때 대구 갑구에서 제헌국회의원으로 입후보하여 당선, 국회 외무·국방분과 위원장으로 국군조직법 정비를 비롯한 건군작업에 기여하였고, 공비토벌작전을 주도하였다. 6·25 때 육군중장으로서 유격대사령관으로 전투에 진력하였다. 1957년에는 김준연(金俊淵)과 통일당(統一黨)을 창당하여 부당수를 거쳐 자유당 말기 간부, 그리고 5·16군사정변 이후 민주공화당에 관여하였다. 1991년 건국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