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래(朴宗來)
1806년 비변사제조(備邊司提調), 형조·이조·공조 판서, 대사간·판윤 등 요직을 두루 거쳐, 다음 해 광주부유수(廣州府留守)가 되었다. 1809년 병조판서로 있으면서 공로가 있어 숭정대부에 가자되고, 동지사 겸 사은사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811년 공조·병조·이조판서, 판윤·좌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판의금부사·형조판서·세자시강원좌부빈객(世子侍講院左副賓客)·공조판서·원접사(遠接使)를 거쳐, 1813년 판돈녕부사·판윤·예조판서·좌참찬을 역임하였다. 1816년 이조·예조·공조판서를 역임하였고, 다음 해 함경도관찰사를 거쳐, 1819년에는 판의금부사가 되었다. 다음 해 공조판서를 거쳐, 1821년 병조판서, 이듬해 세자시강원좌빈객(世子侍講院左賓客)이 되고, 1826년 판돈녕부사, 1830년 좌빈객을 거쳐, 183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