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국(博文局)
한성부 남부 훈도방(薰陶坊) 저동의 영희전(永禧殿) 자리에 있었으며, 처음 『한성순보(漢城旬報)』는 한성부에서 주관, 발행하기로 하였으나, 박영효가 한성판윤을 물러남으로써 동문학으로 이관되어 1883년 10월 이 곳에서 발간하였다. 그러나 1884년 12월 갑신정변으로 불타버리자 이듬해 중부 경행방(慶幸坊) 교동의 전 왕실건물로 이전, 『한성주보(漢城周報)』로 복간되었다. 이 때 총재는 김윤식(金允植), 부총재는 정헌시(鄭憲時), 주필은 장박(張博), 회계는 정병하(鄭秉夏), 외국어 번역원에는 일본인 이노우에(井上角五郎)였다. 신문발행경비는 특수한 세수권(稅收權)을 부여받아 충당되었고, 각 지방관아에 배부되어 그 수익금으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수금이 제대로 되지 않아 관세를 차용하기도 하였다. 결국, 1888년 7월 재정문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