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금천(衿川). 자는 복이(復而), 호는 월당(月塘) · 삼당(三塘). 강뢰(姜賚)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현령 강유경(姜惟慶)이고, 아버지는 이조참의 강찬(姜燦)이며, 어머니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김은휘(金殷輝)의 딸이다. 큰아버지 강돈(姜焞)에게 입양되었다.
김장생의 제자로 1616년(광해군 8)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들어갔으나 시세에 불만을 품고 고향으로 돌아갔다가 인조반정 뒤 교리 등을 역임하고, 대사간 · 대사성 · 도승지 등을 거쳐서 1636년(인조 14) 이조판서에 올랐으며, 1640년에는 우의정에 세자부(世子傅)를 겸하였다.
1627년 부승지로 있을 때 딸이 소현세자빈(昭顯世子嬪)이 되었는데, 그 뒤 강빈(姜嬪)은 심관(瀋館)에서의 영리(營利: 뇌물외교에 소요되는 자금을 마련하려는 것)로 인조의 불평과 역위(易位: 임금의 자리를 바꾸는 것)를 꾀한다는 의심을 받던 중, 세자가 부왕에 의하여 독살된 뒤 강빈도 저주사건(역모)의 주모자로 모함되어 사사되었다.
그것을 ‘강빈의 옥’이라 하는데, 앞서 죽은 강석기는 관작을 추탈당하였고, 부인은 처형되었으며, 아들 강문성(姜文星)과 강문명(姜文明)은 장살(杖殺: 장형을 받고 죽음)당하였다.
따라서, 강석기의 가문은 역적 집안으로 멸문의 화를 당했다가 숙종 때 복관(復官)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저서로는 『월당집(月塘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