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인경(仁卿), 호는 시암(是庵). 할아버지는 사인(舍人) 강온(姜溫)이고, 아버지는 우의정 강사상(姜士尙)이며, 어머니는 훈련원부정 윤광운(尹光運)의 딸이다.
천거되어 왕자사부에 제수되었고, 여러 고을의 수령을 지낸 뒤 1594년(선조 27)에 공조좌랑이 되었다. 이듬해 영유현령(永柔縣令)이 되고 선정하였다 하여 승직되어, 1602년 선천군수(宣川郡守)에 올랐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왕을 호종한 공으로 1604년 호성공신(扈聖功臣) 3등에 녹훈되고, 진창군(晉昌君)에 봉해졌다. 이듬해 홍주목사가 되고 1610년(광해군 2) 상주목사를 역임했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는 회답사(回答使)로 적진에 내왕하여 적정을 비밀리에 탐색하였다. 1632년 한성부좌윤, 1634년 한성부우윤을 역임하였다. 일찍이 선천군수로 있을 때 30여리의 관개수로를 팠는데, 백성들이 이를 ‘강공제(姜公堤)’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