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훤산성이 언제부터 견훤산성이라 불리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조선시대의 각종 읍지류나 고지도에는 성곽의 존재도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견훤이 이곳에 웅거하며 북쪽 지방에서 경주로 향하는 공납물을 거두어 들였다고 하는 구전이 있을 뿐이다.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가 문경 가은 출신이므로 사람들이 인근 지역의 성곽을 견훤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문경에도 견훤산성이라고 불리는 곳이 있다.
견훤산성은 1984년에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지만 이전까지 고고학적인 조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표 조사는 1997년에 실시되어 산성의 규모와 구조 등을 확인하였으며 조사단은 출토 유물을 근거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에 축성된 신라 성으로 추정하였다.
2010년에 견훤산성에 대한 1차 발굴 조사가 추정 동문지 구간에 대하여 실시되었다. 그 문지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성 내외 벽과 보축 성벽만 확인되었다. 조사단은 단면 삼각형 기단 보축, 현문식 성문, 관방 체계 등을 근거로 처음 지은 시기를 삼국시대로 추정하였다.
견훤산성 축성에 사용된 석재는 인근의 기반암인 화강암이다. 초축 성벽은 노두에 노출되어 풍화된 석재를 잘라 내어 세장방형으로 가공하여 쌓았으며, 수축 성벽은 풍화되지 않은 덩어리 암석을 잘라 내어 사각뿔 모양으로 2차 가공하였다. 성벽은 가장 높은 지점의 외벽이 15m에 달하며, 내벽의 높이도 8m에 달한다. 성 내부에서 성벽으로 올라갈 수 있는 등성 시설이 북벽에 3곳, 남벽에 1곳 확인된다. 성벽은 내벽과 외벽의 면석을 놓고 적심석을 빈틈없이 채워 넣었다. 면석과 적심석은 모두 판상석을 사용하여 종회 방향, 귀틀 모양으로 엇갈리게 쌓았다. 외벽에는 높이 6m에 달하는 보축 성벽을 쌓아 벽을 보강하였다.
견훤산성에는 3개의 반원형 치가 확인되었다. 성문은 북문, 서문, 동문 등 3개가 확인되며 그중 성재골과 소라골에서 진입하는 동문이 주된 출입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확인되는 문지는 모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현문식 성문이다.
성내에는 다수의 건물지가 확인된다. 건물지에서 수습되는 토기는 5세기 말에서 6세기 초로 편년되는 경질 토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내면에 포흔이 확인되지 않는 무와통식 기와도 발견되고 있다.
견훤산성의 해발 고도는 541m지만 인접 마을에서의 표고는 175m이며, 도보로 약 20분 정도 거리에 구축된 거점형 성곽이다. 이를 통해 볼 때 군현의 치소성 역할도 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