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에 상서예부 소속의 기구로서 과거 시험과 관련된 여러 가지 실무를 담당하였다. 시원(試院)이라고도 하며, 시험장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과거 응시자는 시험 전에 미리 행권(行卷)과 가장(家狀)을 공원에 제출하여야 했다. 가장은 응시자의 성명과 본관, 4대(代)에 걸친 조상(祖上)의 이름과 관직 등을 기재한 서류이며, 행권은 응시자들이 평소 갈고 닦아 쓴 시부(詩賦)를 편집하여 만든 권축(卷軸)이다.
시험관인 지공거(知貢擧)는 시험 전날에 시제(試題)를 가지고 궁궐에 가서 국왕에게 결재를 받았다. 공원에서 시행되는 시험은 정해진 의례와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시험 날 새벽에 시험관인 지공거와 동지공거 및 감찰 · 봉명별감(奉命別監) 등이 의례에 따라 자리를 잡으면 승선이 금인(金印)을 받들어 공원으로 왔다.
공원의 서리는 응시자를 호명하여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로 나누어 배치하고 시제를 써서 걸었으며, 시험이 끝나면 응시자의 답안지를 거두었다. 이후 승선이 답안지에 금인을 찍으면, 지공거가 합격자 시험지 뒷면에 급제 순위를 적고 황표(黃標)를 붙여서 함에 넣어 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