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원 ()

목차
관련 정보
고려시대사
제도
고려시대, 과거 시험의 실무를 담당한 상서예부 소속의 기구.
이칭
이칭
시원(試院)
제도/법령·제도
시행 시기
고려시대
주관 부서
상서예부
내용 요약

공원(貢院)은 고려시대, 과거 시험의 실무를 담당한 상서예부 소속의 기구이다. 때로는 시험장소를 지칭하기도 하였다. 과거 응시자는 시험을 치르기 전에 행권과 가장을 공원에 제출하여야 했으며, 공원에서의 시험은 정해진 절차와 의례에 따라 진행되었다.

정의
고려시대, 과거 시험의 실무를 담당한 상서예부 소속의 기구.
내용

고려시대에 상서예부 소속의 기구로서 과거 시험과 관련된 여러 가지 실무를 담당하였다. 주1이라고도 하며, 시험장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절차와 의례

과거 응시자는 시험 전에 미리 행권(行卷)과 주9을 공원에 제출하여야 했다. 가장은 응시자의 성명과 본관, 4대(代)에 걸친 조상(祖上)의 이름과 관직 등을 기재한 서류이며, 행권은 응시자들이 평소 갈고 닦아 쓴 주2를 편집하여 만든 주3이다.

시험관인 지공거(知貢擧)는 시험 전날에 주4를 가지고 궁궐에 가서 국왕에게 결재를 받았다. 공원에서 시행되는 시험은 정해진 의례와 절차에 따라 진행되었다. 시험 날 새벽에 시험관인 지공거와 동지공거 및 감찰 · 주5 등이 의례에 따라 자리를 잡으면 승선주6을 받들어 공원으로 왔다.

공원의 서리는 응시자를 호명하여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로 나누어 배치하고 시제를 써서 걸었으며, 시험이 끝나면 응시자의 답안지를 거두었다. 이후 승선이 답안지에 금인을 찍으면, 지공거가 합격자 시험지 뒷면에 급제 순위를 적고 주7를 붙여서 함에 넣어 봉하였다.

운영

공원의 시험문제나 의례 때문에 간혹 문제가 발생하였다. 1132년(인종 10)에는 공원에서 출제한 시제(試題)가 잘못되었다는 비난이 있었다. 어사대는 급제자의 주8를 회수하고 재시험을 치러야 한다고 반박하였으나, 국왕이 받아들이지 않아서 어사대의 업무가 7일 동안 마비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1273년(원종 14)에는 승선 홍자번이 왕명을 받들어 공원에 왔는데, 지공거가 뜰에 내려와 맞이하는 의례를 지키지 않아 논란이 일었다.

참고문헌

단행본

『고려사(高麗史)』
주석
주1

과거 시험을 치르던 곳.    우리말샘

주2

시(詩)와 부(賦)를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주3

글씨나 그림 따위를 표장(表裝)하여 말아 놓은 축.    우리말샘

주4

과거(科擧)의 글제.    우리말샘

주5

국가의 대소 제사(祭祀)가 있을 때에 임금의 명령을 받들고 가서 감찰하는 일을 맡은 별감.    바로가기

주6

황금으로 만든 도장.    우리말샘

주7

누른 빛깔의 표지    바로가기

주8

이름이나 직위를 써서 책상 위에 놓아두는 패. 보통 길고 세모지게 만든다.    우리말샘

주9

조상의 행적에 관한 기록.    우리말샘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