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2년(태조 5)고려태조가 자기가 살던 옛집을 희사하여 창건하였다. 1213년(경종 2) 왕사 지겸(至謙)이 머물렀다. 특히, 담선법회(談禪法會: 선의 도리를 추구하는 모임)가 개최된 사찰로 유명하다.
보제사(普濟寺)에서 3년마다 한 번씩 실시하던 담선법회는 최씨 집권 시기에 이르러 광명사·보제사·서보통사(西普通寺)의 3개 사찰에서 실시되었는데, 현재 이규보(李奎報)가 쓴 「광명사선회설재청설선문(廣明寺禪會說齋請說禪文)」에 그 내용이 전해지고 있다. 또한, 최충헌(崔忠獻)은 왕에게 달아정〔炟艾井〕을 메우고 광명사의 우물물을 어수(御水)로 쓰게 했는데, 이 우물에는 작제건(作帝建)과 용녀(龍女)의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1282년(충렬왕 8)충렬왕이 공주와 함께 행차하여 승려 견명(見明)을 방문하였고, 다음해 정월에 충렬왕이 병으로 눕자 재추(宰樞: 宰臣과 樞臣)가 이 절에서 법회를 열었다. 그 뒤 왕은 1296년 7월에 우란분재(盂蘭盆齋: 음력 7월 15일에 죽은 이, 특히 부모와 조상의 극락왕생을 위한 제사)를, 1301년 9월과 이듬해 2월에는 용화회(龍華會)를 열었으며, 1305년 5월 이 절에 행차하여 대장경을 전독(轉讀: 글자와 어구를 생략하고 經文을 읽는 것)하였다.
1313년(충숙왕 즉위년) 12월충숙왕이 방문하였고, 1351년(충정왕 3) 3월 충정왕이 행차하여 삼계(三界)에 대한 초제(醮祭: 별을 향해 지내는 제사)를 지냈으며, 공민왕은 1353년(공민왕 3) 3월과 1358년 7월, 1359년 3월 이 절에 행차하였다. 특히, 공민왕은 1370년 9월 널리 승려들을 모으고 혜근(惠勤)에게 명하여 이 절에서 공부선(功夫選: 승려의 수행 정도를 시험함)을 시행하게 하였으며, 1371년 9월 16일 양종오교(兩宗五敎)의 각 사찰 승려들이 치르는 공부선을 관람하였다.
태조는 1393년(태조 2)무학(無學)을 이 절에 머물게 하였고, 1399년(정종 1)신덕왕후의 기제사를 지냈다. 1424년(세종 6)부터 이 절은 교종에 속하게 되었으며, 나라에서 전지 100결과 승려 100인으로 정하였다. 그 뒤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충숙왕을 비롯한 이규보·김극기(金克己) 등이 이 절을 소재로 하여 읊은 시가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