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택중(擇中). 권영(權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권홍(權弘)이고, 아버지는 종묘서영 권덕유(權德裕)이며, 어머니는 우찬성 조계상(曺繼商)의 딸이다.
1558년(명종 13) 사마시를 거쳐, 1567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이 되고, 춘추관의 기사관으로 『명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이어 봉교·전적을 거쳐 예조·병조·형조의 좌랑을 지내고 충청도사·직장·사예·사성·직제학·지평 등이 되었다.
1589년(선조 22)에 대사헌으로서 사은사가 되어 명나라에 갔다온 뒤 1591년 형조참판 및 동지경연·예조판서가 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비변사유사당상(備邊司有司堂上)으로 침식을 잊고 국사에 몰두하다가 병을 얻었고, 국세가 날로 위급해가는 것을 보고 울분을 참지 못하여 죽었다.
천성이 강직하여 공적인 일과 사적인 일을 합리적으로 해결하였다. 특히, 표(表)·책(策)에 뛰어나 문신들이 치른 정시에서 장원을 하였다. 시호는 충숙(忠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