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동(安東). 일찍이 대정(隊正)으로 가난하게 지낼 때, 낭중 복장한(卜章漢)이 죄없이 귀양가게 되자 그의 토지를 넘겨받아 몇 년 동안 조(租)를 받았다.
그 뒤 복장한이 사면되어 돌아오자 전혀 모르는 사이였지만, 그 토지에서 받은 전조(田租)가 이미 조운(漕運)되어 왔는데도 자기가 소유하고 있던 조부(租簿: 조세장부)를 복장한에게 가져다주었다. 복장한 또한 토지만 돌려받고 조부를 거절하자, 그것을 그 집에 던져버리고 돌아왔다.
이는 토지의 점탈이 흔히 있던 당시로서는 드문 일이었으므로 세상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또, 이 때 권귀자제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견룡(牽龍: 衛士의 일종)에 선발되었으나, 집이 가난하다는 이유로 사양하여 역시 많은 칭찬을 받았다. 그 뒤 관직이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