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1971년 송산리 5호 무덤과 6호 무덤 사이의 배수로를 정비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된 무령왕릉은 무령왕과 왕비의 합장묘이다. 묘지석과 함께 모두 108종 4,600여점 이 넘는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이 중 금귀걸이는 모두 5쌍으로 왕의 머리 부근에서는 1쌍만이 금제 관식(金製冠飾)과 함께 발견되었다.
1974년 국보로 지정된 금귀걸이는 하나의 둥근 고리[主環]에 두 줄의 귀걸이를 매달은 형태이다. 두 줄 중 하나는 아래에 크고 작은 두 개의 하트모양 즉 심엽형(心葉形) 장식을 단 반면 또 다른 한 줄은 연록색의 곱은옥[曲玉]을 달아 장식하였다. 심엽형 귀걸이는 중간에 원통형의 장식을 달았는데 마치 3개의 오메가가 위, 아래로 마주해 있는 형상이다. 가장자리를 따라 금알갱이를 붙여 장식했는데 이를 누금세공기법이라 한다. 한편 오메가 판 위에는 작고 얇은 고리들을 부착했는데 부분 부분 붉은 색의 안료가 채워져 있다. 원통형의 끝부분은 반구형으로 금선과 금알갱이로 장식해 더욱 화려하다. 아래에는 편평한 판으로 제작한 심엽형이 크게 달려 있고, 그 위로 작은 심엽형이 오목한 형태로 올려져 있다. 곱은옥이 있는 귀걸이 중간에는 5개의 구형이 순차적으로 연결되어 있는데 구형은 작은 고리가 상하로 모여 구성한 형식이다. 구형에는 새김눈테[刻目帶]를 두른 심엽형의 영락들이 달려져 있다. 곱은옥은 마치 여러 개의 구멍을 투공해 장식한 모자를 쓴 모습이며, 끝 부분에도 심엽형의 영락이 나뭇잎처럼 매달려 있다.
하나의 중심 고리에 여러 개의 귀걸이를 매단 형태는 무령왕릉 출토품 외에 그 예를 찾기 어려운 반면, 원통형의 중간 장식을 이용해 만드는 제작방식은 경주 황오리 34호분, 경주 황남동 106-3번지 1호묘, 대구 화원 성산고분, 일본 구마모토현[熊本縣] 에다후나야마고분[江田船山古墳]에서 유사한 예를 살필 수 있다. 이와 같은 신라 고분들은 6세기 전반으로 편년되는 것들로 무령왕릉과 비슷한 시기로 볼 수 있으며, 특히 에다후나야마고분에서도 백제 귀걸이가 발견되어 일본열도까지 전해진 것을 알 수 있다.
곱은옥이 달린 귀걸이 장식에서 볼 수 있었던 구형의 장식은 삼국시대 귀걸이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요소라 할 수 있다. 또한 앞에서 보았던 중간의 장식 형태, 심엽형(心葉形) 영락을 금실로 연결하거나 좁은 금판에 촘촘히 홈을 내어 마치 금알갱이를 이어 붙인 것과 같은 효과를 주는 새김눈테(刻目帶)를 두른 점, 금알갱이와 금선을 붙여 장식하는 누금세공기법이 사용된 점에서 고구려, 신라의 영향관계를 찾을 수 있다.
백제 귀걸이는 신라, 가야에 비해 출토사례가 극히 적어 그 특징을 파악하기 어려웠다고 할 수 있으나, 연대가 확실한 무령왕릉 출토품을 통해 6세기 전반 백제뿐 아니라 삼국시대의 장신구를 파악할 수 있는 기준점을 제공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