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상주(尙州). 할아버지는 김국량(金國良)이고, 아버지는 김인(金仁)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부산과 동래성을 함락시키고 북상하였다. 4월 20일 상주목사 김해(金澥)와 함창현감 이국필(李弼)이 군사를 거느리고 경상도관찰사 김수(金睟)를 후원하기 위해 출진하였는데, 인동과 성주의 경계에서 일본군에게 패하였다. 상주목사 김해는 상주를 사수하지 않고 자신의 권속을 데리고 도망하였다. 순변사(巡邊使) 이일(李鎰)은 문경을 거쳐 상주로 들어와 일본군의 북상을 차단하고자 하였다.
4월 25일 고니시 유키나가 군이 상주로 들어왔고, 이일 군과 전투를 벌였다. 이 상주전투에서 조선군은 일본군에게 크게 패하였고, 이일은 단기로 달아났다. 4월 26일 일본군은 상주를 점령하였다. 상주를 점령한 일본군은 후방기지를 건설하고, 용궁 · 가은 · 화령 등지까지 진출하였다. 인근의 수령들은 모두 도주하였다.
이후 김광두는 정경세(鄭經世) · 이전(李㙉) · 이준(李埈) · 전식(全湜) · 조정(趙靖) 등과 함창 황령사(黃領寺)에서 창의하여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1608년(선조 14) 사망하였고, 상주 효곡서원(孝谷書院)에 김충(金沖), 고인계(高仁繼)와 함께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