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도(淸道). 자는 문원(聞遠), 호는 금포(錦浦). 증조부는 김영(金瑩)이며, 아버지는 김사행(金四行)이다. 아들이 김우화(金遇華)다.
1637년(인조 15)에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644년 익찬(翊贊)이 되어 소현세자(昭顯世子)와 봉림대군(鳳林大君)을 시종하여 심양에 다녀왔다.
귀국 후 1646년 황주판관에 임명된 지 수개월 만에 다시 용천부사(龍川府使)가 되었는데, 그 지역에 호랑이 두 마리가 수시로 나타나 사람을 해치므로 활로 쏘아 모두 잡아 피해를 막았다.
1648년 충청수사가 된 뒤 강계부사·함경남북병사·어영중군(御營中軍)을 거쳐 1656년(효종 7) 경상병사가 되었고, 1663년(현종 4) 통제사(統制使)에 이르렀다. 저서로는 『금포실기(錦浦實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