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예안(禮安). 자는 유성(幼城). 호는 두암(斗庵) 또는 인수(忍叟). 아버지는 생원 김지(金墀)이며, 어머니는 반남박씨로 생원 박태래(朴泰來)의 딸이다.
1774년 증광별시문과전시(增廣別試文科殿試)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주서가 되었다. 1776년 홍인한(洪麟漢)·정후겸(鄭厚謙)의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무함을 입어 삭녕(朔寧)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음 해 정월에 풀려났다.
그 뒤 16년 동안 은거하면서 학문연구에 몰두하였다. 1793년(정조 17) 가주서(假注書)에 임명되었고, 이어 전적·병조좌랑·좌부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는 『두암문집(斗庵文集)』 10권 5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