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덕원(德元), 호는 월암(月菴). 증조는 호조정랑(戶曹正郞) 김이권(金而權)이고, 조부는 충순위(忠順衛) 김원좌(金元佐), 아버지는 내금위(內禁衛) 김숙린(金淑麟)이며, 어머니는 병마우후(兵馬虞候) 김한보(金漢輔)의 딸이다.
1570년(선조 3) 무과에 급제하고 훈련원봉사로 관직생활을 끝내고, 향리에 거주하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다.
당시 경주부의 지방관들이 도망가자 조정의 부름을 받고 의병도대장(義兵都大將)이 되어 소모관(召募官) 주사호(朱士豪), 소모유사(召募有司) 최신린(崔臣麟) 등과 함께 경주에서 왜군을 물리쳤다. 그때 휘하에 의병 1,400여 명을 이끌고 경주 부근의 왜군을 격파하여 많은 전공을 세웠으므로 부산첨사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경주부에 주둔한 왜군을 고립시키기 위하여 도로를 막고 왜군의 북상을 저지하다가 언양에서 진격해온 적의 기병 500명과 맞서 싸워 적을 궤멸시키고 전사하였다. 예하 의병들은 이 승리를 계기로 경주부의 왜군을 공격하여 이 지역 전투 중 가장 큰 전과를 올렸다. 사후 곧 당상관에 증직되었으며, 1758년(영조 34) 참판에 추증되었다. 1800년(순조 1) 경상도 경주의 남강사(南岡祠)에 제향되었다(남강사는 1868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훼철되고 지금은 祠址만 전승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