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작. 비단 바탕에 채색. 1990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 소재 도갑사 소장. 도갑사를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도선국사(827∼898)를 그린 불화이다.
전암 광양 옥룡사의 징성혜등탑비(澄聖慧燈塔碑)의 비문에 의하면 도선국사는 영암 출신이라 한다. 그리고 월유산 화엄사에서 출가하여 846년 동리산 태안사의 혜철을 찾아가 크게 깨우쳤다. 그 후 전남 광양 옥룡사에 머물렀다. 이름을 널리 떨쳐 헌강왕이 초청하여 법문을 들을 정도였다. 태안사에서 72세로 입적하니 왕이 그에게 요공선사(了空禪師)라는 시호를 내렸다는 내용이다.
사전(寺傳)에 의하면 세조 2년(1456) 도갑사를 중창한 수미왕사의 제안으로 처음 그렸다고 전한다. 작품의 양식적 특징으로 볼 때 이 작품은 후에 이모(移模)된 것으로 추정된다.
선암사에 소장된 도선국사의 진영에 의하면 순조 5년(1805)에 그려졌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과 비교할 때 도갑사 소장 도선국사 진영은 인물의 표현방법, 의복의 음영 처리, 화문석 돗자리 무늬 등에서 유사하여, 같은 시기에 그려졌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선암사의 진영보다 단순화된 복장과 옷깃의 끝머리가 안으로 접혀있는 점, 의자의 양쪽에 장식된 꽃무늬 띠 등으로 보아 더 늦은 시기에 제작되었을 수도 있다.
그림의 형식은 오른쪽을 향하여 3/4분면의 모습을 취하고 왼손에 주장자(拄杖子 : 선사들이 좌선할 때나 설법할 때에 가지는 지팡이)를 들고 등이 높은 의자에 앉아 있는 승려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도선국사는 녹색의 가사를 입고 겉에 붉은 장삼을 걸치고 앞을 향해 조용히 앉아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스님의 모습은 세필로 온화한 승려의 분위기를 잘 전해 주고 있다. 오른쪽 어깨 위에는 가사 자락을 묶은 금구 장식이 묘사되었으며 두 발은 가지런히 모아 의자의 발걸이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의자를 잡고 있는 오른쪽 손이 매우 어색하게 처리되어 형식화된 면을 보여 준다.
의자 밑에는 화문석의 돗자리 문양이 묘사되었다. 이처럼 초상화나 진영에 화문석의 문양이 묘사되는 것은 조선 후기, 특히 18세기 이후에 많이 사용되던 수법이다. 이 진영은 도갑사에 함께 전해 오는 수미왕사 진영(전라남도유형문화재, 1990년 지정)과 인물 표현, 구도, 기법 등이 동일한 것으로 보아 같은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바탕색은 옅은 황색으로 처리하고 녹색과 적색 및 고동색 등이 간단하게 설채(設彩 : 색을 칠함.)되었다. 의자 등판의 잔잔한 꽃무늬와 화문석의 잔잔한 문양이 차분한 느낌을 준다. 화면의 왼쪽(향우)에는 적색의 화기(畵記)란을 만들어 ‘도선국사진영(道詵國師眞影)’이라고 명기하였다. 제작 연대는 19세기경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