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명숙(明叔), 호는 휘헌(撝軒). 대구(大邱) 하빈현(河濱縣) 도촌리(島邨里)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도여유(都汝兪)이며, 어머니는 여흥이씨(驪興李氏) 이우겸(李友謙)의 딸이다. 종숙(從叔) 도성유(都聖兪)에게 입후되었으며, 정구(鄭逑)·서사원(徐思遠)의 문인이다.
1633년(인조 11)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으며, 1651년(효종 2) 식년문과(式年文科) 병과(丙科)에 급제하였다. 창락찰방(昌樂察訪)·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예조좌랑(禮曺佐郞)·용담현령(龍潭縣令)·예조정랑(禮曺正郞) 등을 역임하였다.
1656년(효종 7) 용담현령으로 부임하여 봉급 일부를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1659년 예조정랑으로서 자의대비(慈懿大妃) 기년복(朞年服, 일 년 동안 입는 상복)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사직하였다.
이듬 해 다시 예조정랑에 임명되어 명경과(明經科)를 공정하게 주관하여 선비들로부터 칭찬을 받기도 하였다. 이 때 기년설을 반대한 소를 올렸다가 황간(黃澗)으로 유배되었다가 1675년 숙종이 즉위하자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에 임명되었다. 저서로는 『휘헌문집(撝軒文集)』 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