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주메뉴 바로가기

두경승(杜景升)

고려시대사인물

 고려후기 서북면병마사, 평장사, 문하시중 등을 역임한 무신.   

확대하기축소하기프린트URL의견제시

트위터페이스북

의견제시
항목명두경승
이메일올바른 형식의 이메일을 입력해 주세요.
의견
10자 이상 상세히 작성해 주세요.
첨부파일
의견제시 팝업 닫기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고려후기 서북면병마사, 평장사, 문하시중 등을 역임한 무신.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전주만경현(萬頃縣) 사람으로 만경두씨(萬頃杜氏)의 시조이다. 학식은 없었으나 성품이 순후하고 가식이 적으며 용기와 힘이 셌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의종 때 공학군(控鶴軍)에 뽑혔다가 대정(隊正)이 되어 후덕전(厚德殿)의 견룡(牽龍)주 01)이 되었다. 정중부(鄭仲夫)의 난 때 무인들이 남의 재물을 약탈했으나 홀로 전문(殿門)을 지키면서 남의 재산을 범하지 않았다.
명종 초 산원(散員)이 되었다가 이의방(李義方)의 추천으로 내순검군지유(內巡檢軍指諭)가 되었으며, 뒤이어 낭장(郎將)이 되었다. 1173년(명종 3)김보당(金甫當)이 반란을 일으키자 남로선유사(南路宣諭使)가 되어 인심을 수습하고 뒤이어 장군이 되었으며, 서북면병마부사가 되어 창주(昌州: 지금의 평안북도 창성)를 진수하였다.
이 때 서경유수 조위총(趙位寵)이 반란을 일으키자 개성으로 후퇴하였다가 다시 동로가발병마부사(東路加發兵馬副使)가 되어 고산(孤山)·선주(宣州: 지금의 평안북도 선천)·맹주(孟州: 지금의 평안남도 맹산)·무주(撫州: 지금의 평안남도 덕천) 등지에서 무공을 세운 후 개성으로 개선하였다. 다시 후군총관사(後軍摠管使)가 되어 연주(漣州: 지금의 평안남도 개천)에서 적을 크게 무찔렀다.
1176년에 윤인첨(尹鱗瞻)과 함께 서경을 공격해 함락시키고 조위총을 사로잡아 죽였다. 그 뒤, 서북면병마사가 되어 영청(永淸: 지금의 평안남도 평원)을 진수했다. 이듬해 북로처치사(北路處置使)를 겸했고, 뒤이어 상장군·지어사대사(知御史臺事)에 올랐다.
1180년에 공부상서, 이듬해 호부상서, 1185년에 참지정사(參知政事), 1190년에 수태위(守太尉)가 되었다. 이듬해 판이부사(判吏部事)·수국사(修國史)가 되어 전주(銓注)를 맡았다.
뒤이어 평장사(平章事)가 되었다가 1193년 삼한후벽상공신(三韓後壁上功臣)이 되었으며, 다시 감수국사(監修國史)를 겸하였다. 이듬해이의민(李義旼)과 함께 문하시중이 되었다가 1196년에 중서령(中書令)이 되었다.
이듬해 새로 정권을 잡은 최충헌(崔忠獻)에 의해 자연도(紫燕島)로 귀양갔다가 울분에 피를 토하고 죽었다. 그러나 두경승이 금을 가지고 있어 그의 종이 도둑질하려고 은밀히 죽였다고도 전한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衛士의 하나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민병하
페이지 상단으로 이동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