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정은 고려시대 무반 품외직으로, 경군인 2군 6위(二軍六衛)의 종9품 하급 지휘관이다. 이들은 25명으로 구성된 단위부대인 대(隊)의 장(長)이다. 1,000명으로 구성된 1령(領)에는 40명의 대정이 있었으며, 2군 6위의 경군은 45령으로 구성되었으므로 1,125명의 대정이 있었다. 한편 주현군인 일품군에도 대정이 편성되어 있었으며, 부병정(副兵正) · 부창정(副倉正) · 부호정(副戶正) · 제단정(諸壇正)급의 향리가 임명되었다. 중방, 장군방, 낭장방, 교위방처럼 자신들의 회의기구인 대정방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2군 6위의 경군과 지방군인 주현군의 말단 부대편제로 25명의 병력을 지휘하였다. 1령은 1,000명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1령에는 40명의 대정이 있었고 50명의 병력을 통솔하던 지휘관인 교위(校尉)와 합쳐 육십(六十)이라고 불리었다.
상장군‑대장군-장군-중랑장-낭장-별장-산원-교위-대정으로 이어지는 무반 지휘체계의 말단에 위치하였으나 품외직이었다. 문반 9품과 권무직이 관인으로 인정된 것에 비하여 교위와 대정은 그렇지 못하였다. 대정은 무반 관인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무반 품관직으로 진출할 수 있는 입사직으로서 문반의 품외인 입사서리직에 비견된다.
전시과와 녹봉을 지급받아 녹관이라고도 불렀으며 병부의 고과 대상이었다. 개정 전시과에서 대정은 14과에 올라 있어 전지 30결과 시지 5결을 지급받았다. 15과인 마군과 16과인 역군, 보군보다는 1등급 위에 있었다. 군인이 부족할 경우 역역에도 동원되는 등 고역의 담당자이기도 하였다.
대정은 양반, 향리, 일반 군인 등이 임명될 수 있었으며, 군공이나 입공, 음서 등의 방식으로 보임되었다. 군공이나 음서, 입공 등의 경우를 제외하고 무반의 관직수만 고려할 경우 대정에서 고위 무관직으로 진출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였다.
한편 주현군의 일품군 지휘관이기도 하였는데, 부병정(副兵正) · 부창정(副倉正) · 부호정(副戶正) · 제단정(諸壇正) 급의 향리가 임명되었다. 중방과 장군방, 낭장방처럼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회의체인 대정방(隊正房)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까지 존속하였으며 대-오-졸로 이어지는 지휘체계의 말단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