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수군은 고려시대, 금오위(金吾衛)나 감문위(監門衛)에 소속되어 관청, 창고, 사원 등을 수비하던 군사이다. 또한 벌채 및 화재를 감시하거나 능을 돌보기도 하였다. 『고려사』 병지 2 숙위조와 별도로 병지 3 간수군조가 기술된 것은 부대를 배치하는 일이 항상 이루어졌고 주요 시설 감시는 국왕의 숙위와는 별도의 임무였기 때문이었다. 총 101개 관청에 배치되었고, 장상 4인, 잡직장상 6인, 장교 84인, 잡직장교 96인, 산직장교 64인, 산직장상 14인, 군인 109인, 감문위군 10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국가의 재물이 보관된 창고(倉庫)와 관청, 능, 사원, 객관(客館) 등을 경비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금오위(金吾衛)나 감문위(監門衛)에 소속된 군사들이다. 주로 고(庫), 창(倉), 도감(都監), 관(館), 사(寺), 서(署), 국(局) 등 창고와 속사(屬司) 위주로 배치되었으며, 이곳을 경비하는 임무를 맡았다.
『고려사』 병지 3에 간수군조가 위숙군(圍宿軍), 검점군(檢點軍), 주현군, 선군(船軍), 공역군(工役軍) 등과 함께 별도의 조항으로 서술되어 있다. 전해고부터 제기도감까지 총 101개의 창고와 관청에 배치되었는데, 그 조직은 장상(將相) 4인, 잡직장상(雜職將相) 6인, 장교(將校) 84인, 잡직장교(雜職將校) 96인, 산직장교(散職將校) 64인, 산직장상(散職將相) 14인, 군인 109인, 감문위군(監門衛軍) 10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여기서 군사와 감문위군이 동일한 군사를 말하는 것으로 보이나, 일부에서는 군사를 농민병들 가운데 선발된 존재로 보고, 감문위군은 자신이 늙었거나 부모를 모실 형제가 없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어서 감문위에 소속된 병사로 보기도 한다. 직사장교는 군사만 지휘하고, 산직장상(散職將相)은 감문위군만 지휘하였던 것을 근거로 들고 있다.
한편에서는 간수군을 위숙군, 검점군과 함께 금군의 구성 부대로 보기도 한다. 원의 금병(禁兵), 즉 위숙군은 그 기능과 역할에 따라 구별되는데 조회에 동원되는 위숙군과 천자의 내탕(內帑)을 지키는 간수군도 이에 포함된다고 하였다. 고려에서도 위숙군이 제문, 사원, 능 등을 지키고, 간수군은 왕실의 내탕을 비롯한 관서를 지키는데 원의 그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금군으로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