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신앙 (마을)

동해안 별신굿 / 손님굿
동해안 별신굿 / 손님굿
민간신앙
개념
한 마을이 단위가 되어 행하는 종교용어. 부락신앙.
이칭
이칭
부락신앙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마을신앙은 한 마을이 단위가 되어 행하는 부락신앙이다. 마을신앙은 지역이나 사람, 부락신의 대상에 따라서 동제, 동신제, 당제, 당굿, 당산제, 성황제, 산신제 등으로 불린다. 부락신앙으로서 마을신앙은 마을공동체의 풍요와 유지 및 번영이 가장 큰 목적이다. 마을신앙은 크게 유교식 동제와 별신굿으로 나뉜다. 동제는 마을 대표가 제관이 되어 정월에 제사를 지낸다. 별신제는 특정한 날을 정해서 무당을 불러 대행을 시킨다. 경배 대상은 큰 나무나 바위처럼 구체적 상징물이다. 마을신앙은 지연을 강화하는 의례로서 중요한 기능을 하였다.

정의
한 마을이 단위가 되어 행하는 종교용어. 부락신앙.
개관

집이 가족의 생활공동체라면 마을은 가족을 포함한 친족이나 이웃사람 등 지연을 함께 하는 촌락민의 생활공동체이다. 곧, 촌락민은 친족 · 친구 · 가족 등의 구별을 초월하여 같은 지연이라는 공동의식을 가지고 공동의 생활을 영위한다. 따라서 마을 안에는 친족관계와 이웃관계를 포함하는 여러 가지 사회적 · 경제적 · 종교적 관계가 있다. 혼례나 장례와 같은 통과의례, 두레품앗이와 같은 노동교환의 조직, 돈이나 쌀을 모으는 계(契) 조직이 있다.

마을의 경계에나 중심에는 서낭당이 있어서 동제를 함께 지내고 우리 마을이라는 의식을 강화한다. 동제는 마을사람으로 하여금 ‘우리’라는 의식을 갖게 하는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한다. 우리 마을이라는 공동체의식을 높이는 데 동제 이상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혼인은 원칙적으로 혈연이나 지연을 넘어선 외혼제(外婚制)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동네혼인을 하는 예는 흔하지 않다. 계의 경우도 마을 안에 국한되지 않고 오히려 마을 밖으로 확대되는 경향이 있다. 오직 동제만은 마을사람이 주인이 되어 행하는 의식이며, 마을 밖 사람은 강하게 배제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마을신앙이라고 하면 촌락이 믿고 행하는 모든 종교적인 행위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마을에 초상이 났을 때는 마을사람들이 친척관계에 관계없이 같이 금기를 지킨다. 예를 들면 빨래를 하지 않거나 마을에 예정된 혼례식 등을 연기하거나 한다. 출산이나 초상 등의 길흉사가 마을 공동의 감정으로 확대된다. ‘부정(不淨)을 같이 탄다’는 등의 표현은 일종의 공동체의식을 표출시킨 예이다.

그리고 혼례식도 마을공동의 행사로서 행하고 있다. 이것이 비록 형식적이고 신앙성이 약하다고는 하여도 신성성(神聖性)이 강조되고 있는 점에서 볼 때는 신앙과 깊은 관련이 있다. 원칙적으로는 가족이나 친족의 행사인 관혼상제가 곧바로 촌락의 행사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때 나누어 먹는 음식에는 신성(神聖)이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많은 세시풍속 가운데도 마을신앙이 많이 표출되고 있으나, 촌락전체의 평안과 번영을 위하여 촌락민 전체가 참여하여 행하는 마을신앙으로는 동제가 가장 대표적인 것이다.

역사적 의의

마을신앙은 집단신앙의 한 유형이다. 집단신앙은 부족국가시대부터 널리 행하여졌는데, 부여에서는 영고(迎鼓)라 하여 정월에 하늘에다 제사를 지냈고 며칠을 계속하여 음식가무(飮食歌舞)를 하였다. 또, 한(韓)에서는 씨를 뿌리고 난 5월과, 추수를 끝내고 난 10월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귀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먹고 마시며 춤을 추었던 천신제(天神祭)가 있었다. 예(濊)에서는 10월에 주야로 음식가무하면서 하늘에 제를 올린 무천(舞天)이 있었으며, 고구려에서도 10월에 국중대회(國中大會)동맹(東盟)을 열어 시조 주몽(朱蒙)의 모신(母神)을 맞아 제사지냈다.

이러한 제의는 모두 그해의 풍작을 천신에게 기원하거나 풍작을 감사드리는 동시에 나라의 태평을 기원하는 집단제의였으며, 이러한 부족단위의 제의가 사회가 세분화됨에 따라 각 마을단위로 토착화되어 마을신앙으로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종류 · 명칭

마을신앙은 크게 유교식 동제와, 별신굿 또는 도당굿으로 이분한다. 이 중 동제는 전국적으로 볼 때 비교적 일치하지만 별신굿이나 도당굿은 지역적인 차이가 심하기 때문에 각각 별개로 분류하여 삼분하는 경우도 있다. 이를 다시 지역적으로 나누면 중부 이북지방에서는 동제와 도당굿으로, 남부지방에서는 동제와 별신굿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들 두 가지 형태가 한 마을에서 함께 행하여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한가지만 행하여지는 경우도 있고 전혀 행하여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한가지만이 행하여진다고 할 경우에는 별신굿만 행하는 마을은 극히 드물게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마을에서 한번의 제를 지낸다고 하면 동제만을 지내는 것을 뜻한다.

두 가지 형태 중 동제는 정기적으로 일정한 제일(祭日)에 제기(祭期)를 가지고 마을에서 선출된 대표가 제관이 되어 마을을 위하여 제사를 지낸다. 그러나 별신제의 경우에는 일정한 기간이 있기는 하지만 마을의 사정이나 능력에 따라서 비교적 일정한 때에 날짜를 잡아서 행하게 되고, 무당이라는 직업적 사제자를 불러서 대행을 시키기 때문에 마을사람이 직접 제관이 되지는 않는다. 즉, 별신제는 마을 전체를 위한 굿이기는 하지만 주민들이 각각 자신의 가정이나 개인을 위하여 기원을 드린다는 의미도 강하다. 그리고 동제는 밤에 행하여 다른 마을사람들에게 공개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으나 별신제는 공개적으로 개방하여 축제적인 분위기를 띠는 것이 상례이다.

두 가지가 대조적이기는 하지만 마을을 위한 지연적 관계에서 행하여진다는 점에서는 근본적으로 일치하는 것이다. 그리고 동제는 가정에서 행하여지는 유교식 제사와 형식상으로 일치되는 면이 매우 많다. 그러나 가정의 제사는 조상에 대한 제사이고 혈연성을 강조한 나머지 비혈족자에게는 배타적이라는 점에 반하여, 동제는 원칙적으로 지연을 강화하는 기능과 목적을 가진다는 특성을 지닌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동제는 가정을 기본으로 하는 신앙형태가 지역과 지연으로 확대 발전되어 공감대를 형성하는 공동체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마을신앙의 명칭은 지역이나 사람, 동제를 지내는 위치나 부락신의 대상에 따라서 각각 달리 명명되어 여러 가지로 불리고 있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을 동쪽과 서쪽으로 나눌 때, 동부인 강원도와 경상도에서는 성황제 · 서낭제 · 골맥이서낭제 · 산신제 · 당제 · 동제 등의 명칭이 널리 분포되어 있다. 이 중에서도 성황제와 골맥이서낭제는 동부의 북부지역에, 당제 · 산신제 · 동제 등의 명칭은 남부지역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서부인 서울 · 경기도 · 충청도 · 전라도에서는 산신제 · 당제 · 당산제 등의 명칭이 널리 분포되어 있는데, 서부의 북쪽에서는 산신제와 산제의 명칭이 우세하고 남쪽 및 서쪽 해안에서는 당제 · 당산제라는 명칭이 많다. 기타 서울과 경기지방에는 부군당제(府君堂祭) · 국사제(國師祭) · 도당제(都堂祭) 등의 명칭을, 충청도지역에서는 거리제 · 장승제 · 탑제(塔祭) · 풍어제라는 명칭도 찾아볼 수 있으며, 강원도에는 해신제(海神祭) · 고청제(告請祭) 등도 있다.

그러나 전국적으로 볼 때 가장 널리 분포되어 있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명칭으로는 동제 · 동신제 · 당제 · 당굿 · 당산제 · 산제 · 산신제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전국적으로 당제라는 명칭이 많이 나타나는 까닭은 삼국시대부터 부락집회장소인 남당(南堂)을 마을의 진수산(鎭守山)인 당산에 설치하여 집단제의를 거행한 것과 깊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목적

마을신앙의 목적은 어느 곳의 제의에 있어서나 대동소이하다. 제의는 초인적인 영력(靈力)을 자기의 생활과 생산에 유리하게 작용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것이 근본목적이 되었다. 특히 농사를 짓는 것을 주업으로 삼았던 우리 민족의 경우에는 농경의 풍요를 기원하는 농경의례가 곧 마을신앙의 중요한 내용이 될 수밖에 없었으므로, 마을제의의 목적은 마을공동체의 농경생산과 생활의 유지번영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이와 같은 목적은 어촌의 경우 풍어(豐漁)를 기원하는 것으로 집약되었으며, 기타 여러 가지 목적을 수반하게 되었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 우순풍조(雨順風調)로 오곡의 풍작을 기원함.

② 재화나 나쁜 병의 침해 없이 마을이 무사태평하기를 기원함.

③ 소 · 말 · 돼지 · 양 · 닭 · 개 등의 가축들이 많이 번식하기를 기원함.

④ 부귀가 충만하고 복록이 날로 많아지기를 기원함.

⑤ 만사가 형통하여 집집마다 평안하고 마을이 태평하기를 기원함.

⑥ 나아가서 천하가 태평하기를 기원함 등이다.

이러한 목적은 인간생활에 있어서 더 없이 중요한 희망으로서, 그것은 동제를 지낼 때마다 축문(祝文)이나 주사(呪詞)를 통해서 제신(祭神)에게 고해지게 되는 것이다.

제당(祭堂)

마을신앙을 집전하기 위해서는 의식을 행하는 제당, 신앙의 대상이 되는 제신(祭神), 신성한 의식을 행하는 제일(祭日)의 선택, 의식을 집행하는 사제자(司祭者)가 필수적인 요건이 된다. 일반적으로 제당이라고 하면 신이 내리는 곳, 또는 신이 머무르는 곳이다. 마을의 집단의식을 행할 때 신과 인간이 동석하여 함께 놀고 함께 음식을 먹으면서 신에게 인간의 기원을 고하고 동시에 신의 의지를 탐지하는 곳이 제당이다. 아울러 모든 마을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균등한 신의 축복을 받는 곳이 제당이기도 하다. 따라서 제당은 인간생활에 있어서 가장 신성한 곳이며, 그 신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인간의 일상생활과는 격리된 곳이어야 한다.

제당을 크게 분류하면 고정제당과 임시제당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고정제당은 이전부터 항상 그곳에서만 제의를 거행하였던 불변의 장소이며, 임시제당은 제의를 거행할 때마다 좋은 곳을 가려서 제를 거행하는 장소를 말한다. 대부분의 제당은 고정제당이지만 제주도의 일부지역을 비롯한 몇몇 곳에서는 임시제당도 찾아볼 수 있다. 고정제당의 위치는 대체로 산 속과 해변, 마을 입구, 마을 복판, 하천가, 우물가 등에 있다.

이 중 산 속에 있는 제당은 산꼭대기와 산중턱 · 산밑의 위치에 따라 정상제당 · 중복제당 · 입구제당으로 나누어진다. 고대사회에는 산정제당이 많았으나 차츰 중복이나 입구로 이전되었고, 급기야는 마을의 입구나 생활근거지 속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이와 같이 제당의 위치가 마을 쪽으로 가까워진 것은 생업의 분화, 인간의 공리적(功利的) 욕구, 가까이에서 신을 접하려는 인간의 종교적 본능에서 비롯된 것이다.

제당의 형태는 크게 나누어서 자연물로 표시된 경우와 인공물로 표시된 경우, 그리고 양자가 복합적으로 표시된 경우가 있다. 자연물로는 수목 · 암석 · 암반 · 누석(累石) 등을 들 수 있고, 인공물로는 목간(木竿) · 장승 · 신도(神圖) · 당집 · 신당 등을 들 수 있다. 전국적으로 볼 때 가장 널리 분포하고 있는 제당의 형태는 신수(神樹)이고,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이 신수와 누석의 복합제당이며, 그 다음이 당집 · 장승 등의 형태이다.

제단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제당은 원래 신수로 표시되었던 것이 후대로 내려오면서 거기에 누석단(累石壇)이 부수되었고, 더 후대에는 평소에 제기와 제구를 보관하고 제사를 지낼 때 제물을 준비하기 위한 장소로서 제당 주위에 작은 집을 짓게 되었다. 여기에서부터 신체(神體)인 신수와 작은 집인 신당이 분화되기 시작하였다. 그 뒤 신당의 비중은 점점 커진 데 비하여 신수는 점차로 노후화하면서 그 비중이 감소되었다.

그렇게 되자 신당의 내부에는 새로운 수요에 의한 신간(神竿) · 신령(神鈴) · 신기(神旗) · 무신도(巫神圖) · 신상(神像) · 신위패(神位牌) 등이 분화, 형성되었다. 오늘날에는 제당이라고 하면 당연히 신당은 당집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제사를 지낼 때의 편의시설인 당집 없이 지내는 제당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제신

마을신앙의 경배대상이 되는 신체는 구체적인 상징물이다. 신체는 신의 의복과 같은 것으로서 신체에는 신이 머물러 있다고 믿기 때문에 그것은 곧 신이라는 관념이 발생하였다. 따라서 신체를 함부로 하면 신이 벌을 내린다고 믿게 되었다. 마을신앙의 대상이 된 초기의 신체는 극히 소박한 자연물 그대로의 것이었다. 그러나 후대에 내려오면서 인공을 가한 인조신체(人造神體)가 나타났고, 마침내는 자연물과 자연물, 인조물과 인조물, 자연물과 인조물이 중복된 복합신체가 나타나게 되었다.

자연신체로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신수이다. 그 까닭은 수목이 풍요를 상징하고 생명의 윤회나 재생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겨울에는 죽은 듯이 있다가 여름이 되면 다시 무성해지는 수목을 통하여 재생불사(再生不死)와 다산풍요(多産豐饒)의 생명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인공신체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길지(吉紙) · 신도(神圖) · 신상 · 위패 · 장승 등을 들 수 있는데, 이 중 길지는 신체와 신성한 장소를 표시하는 기능을 지니었다. 이 길지는 인공신체의 초기형태로서 나무로부터 생산되는 종이를 수목의 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하였고, 그 색이 백색이어서 태양을 상징할 뿐 아니라 멀리서도 쉽게 식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체로 채택하였다고 보고 있다. 그 밖의 신도 · 신상 · 위패 · 장승 등은 신체를 보다 구체화한 것이다. 복합신체는 신체 중 가장 후기의 형태로서 제당 표식의 강화를 위한 수단이었다. 따라서 복합신체는 신수 곁이나 누석 위에 신간을 세우고 그 신간 위에 새 모양의 목조물을 부착하고 있는 것 등의 형태를 보이게 된다.

마을신앙의 대상이 되는 신들의 신격(神格)은 구체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 그 까닭은 신격에 대해서 마을 주민들이 왈가왈부하는 것을 불경(不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신을 막연하게 당신 · 당산할머니 · 서낭님 · 산신님 등으로 부를 뿐이다. 현재까지 알려지고 있는 마을신앙의 대상이 되는 신은 크게 자연신과 사람의 신인 인신(人神)으로 나누어진다. 자연신은 다시 천신 · 일신(日神) · 성신(星神) · 산신(山神) · 수신(樹神) · 서낭신 · 지신(地神) · 수신(水神) · 사귀신(邪鬼神) 등으로 나누어지며, 인신은 다시 사귀신 · 장군신 · 대감신 등으로 나누어진다.

또한 이러한 신들은 시대가 내려옴에 따라 더욱 세분되는데, 산신의 경우를 예로 들면 산신 · 산천신 · 성모(聖母) · 신모(神母) · 국사신(國師神) 등으로 나누어지게 된다. 그리고 현재의 마을신앙에서는 특정한 하나의 신에만 제사를 하는 경우보다는 여러 신에게 동시에 제사를 드리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며, 그 제사의 주된 신이 어떠한 신이든 반드시 산신에게도 제사를 드리는 것을 기본으로 삼고 있다. 이것은 산신이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 가장 원초적인 근본신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일과 제물

우리나라와 같이 농경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는 농경과 관련된 시간을 제일로 잡는 것이 일반적인 통례이다. 그러나 제일은 역사적으로 전승되어온 관념에 따라서 그대로 전승되는 경우도 있고 농사력이나 태음력을 따르는 경우도 많았다. 동제의 제일이 1년에 한번인 경우에는 정월 대보름이 가장 많은데, 전체적으로 보아 우리나라 동제는 거의 대부분이 정월에 집중되어 있다. 정월은 한해가 시작하는 시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사회에서는 아직 농사를 시작하기 전의 쉬는 계절이다.

그리고 제의는 일반적으로 밤중에 행하여진다. 낮과 밤이 어느 쪽이 더 신성한 것인지는 말하기 어렵지만 보통 우리 나라의 제사나 무속신앙에서는 밤이 신성한 시간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제일은 성스러운 시간이기 때문에 제일을 앞두고는 부정(不淨)한 일을 금하고 있다. 만일 제일을 잡은 다음에 부정한 일이 생기면 제일을 물리거나 제사를 중지하는 경우도 많다. 그 까닭은 성스러운 제사의 시간이 부정과는 대치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제의 제일은 일정한 기간을 두고 정기적으로 찾아오지만 별신굿은 1년 또는 격년, 3년 · 5년 · 10년 등의 긴 기간을 두게 된다. 특히 별신굿에서는 밤과 낮이 함께 중요한 시간일 뿐 아니라 시간 자체에 대한 신성한 의미보다는 축제적 분위기를 더욱 중요시한다. 따라서 동제는 주기성인 데 비하여 별신제는 주기성이 약하고 동제의 시간을 보조적으로 재강조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제일에 앞서서 금기는 반드시 준수하게 된다. 우선 부정한 일을 금기한다. 싸움이나 살생 등을 비롯한 이상한 행동을 삼가는 것은 물론이고 출산이나 초상에 대해서도 금기가 뒤따른다. 예를 들어서 만삭된 임부가 있을 때는 제일을 앞두고 다른 마을로 내보내고 지내도록 한다. 마을 밖은 마을 안과는 부정의 관계가 없다는 뜻에서이다. 만일 부정한 일이 있으면 동제를 연기하거나 부정을 최소한으로 줄인 뒤 실시하게 된다. 예를 들어서 사람이 죽었을 때는 가매장만 한 채 장례를 행하지 않고 동제를 지내거나 동제를 연기 또는 중지하게 된다. 그 까닭은 부정한 상태에서 동제를 지내면 제의의 효과가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을에 불행한 사고가 나기 쉽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정한 일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것도 금하는 경우가 많다. 그 대표적인 것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해안 가의 마을에서는 배를 모두 사장에 끌어올려 놓고 쉬게 되는 것이다. 일뿐만 아니라 일상적으로 행하는 성교(性交)도 금기한다. 성교는 일반적으로 규제하기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신앙으로 금기를 행하도록 되어 있다. 마을사람 전체가 부정으로부터 몸을 지키고 신성기간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부정의 범위가 마을 전체라는 것을 의미하며, 부정 자체가 마을의 결속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물(祭物)은 마을신의 신격에 따라서 그 종류가 다르고 조리하는 방법도 달라지게 되지만, 일반적으로는 신찬(神饌)과 신폐(神幣)와 향촉(香燭)으로 크게 구분이 된다. 신찬에는 술 · 고기 · 밥 · 떡 · 포(脯) · 해(醢) · 탕(湯) · 건어물 · 소채 · 해초 · 과일 · 과자 등이 있고, 신폐로는 베 · 종이 · 돈 등이 있으며, 곳에 따라서는 씻은 쌀이나 조 등의 곡물을 올리기도 한다.

신찬 중에는 술이 가장 중요한 것으로서 이를 제주(祭酒)라고 한다. 제주는 강신(降神) · 헌작(獻酌) · 음복(飮福) 등의 제의절차에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인 것이다. 신이 술을 마실 줄 알거나 마시지 모르거나를 불문하고 반드시 제주를 사용하는 까닭은 술이 부정을 가시게 하는 힘이 있고 술의 취기가 쉽게 망아(忘我)의 경지에 이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이다. 그리고 육류는 희생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개고기를 제외한 소 · 돼지 · 닭 등 대부분의 고기를 사용할 수 있다.

제의가 끝나면 제물의 일부를 신에게 바치게 되는데, 이 때에도 신앙의 대상이 되는 신의 격에 따라 그 바치는 방법이 다르다. 즉 천신에게는 태워서, 지신에게는 땅에 묻어서, 수신에게는 물에 가라앉혀서, 산신이나 수목신에게는 나무에 걸어서, 돌이나 바위신에게는 그 위에 놓아서 바치는 것이 일반적인 통례이다. 신에게 바치고 남은 제물은 참례자들이 나누어 먹게 되는데 이를 음복이라고 한다. 이러한 음복을 통하여 신과 인간은 보다 중요한 융화작용과 신비의 연쇄가 이루어진다. 이는 신에게 바쳐졌던 제물이 인간의 체내에 들어감으로써 인간은 신이 내린 축복을 만끽하게 된다는 것을 상징화한 것이다.

사제자(司祭者)

사제자는 신을 맞이하여 신에게 인간의 기원을 고하는 동시에 신의 뜻을 탐지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고대사회에서는 무인(巫人)이 이를 담당하였고, 지금도 강릉단오굿 · 은산별신제 등의 큰 제의에서는 무인이 행하고 있다. 그러나 마을단위의 제의인 동제에서는 무인 대신에 제관(祭官) · 제주(祭主) 등으로 불리는 사제자를 선정하여 그로 하여금 모든 제의를 주관하도록 하고 있다.

동제의 제관으로 선정될 수 있는 조건은 40세 이상의 성인남자, 상주가 아닌 사람, 가족 중 최근에 임신 또는 출산한 자가 없는 사람, 제의가 끝날 때까지 부인에게 월경이 없는 사람, 생활환경이 깨끗하고 재혼한 일이 없는 사람, 제일에 생기복덕(生氣福德)이 닿은 사람 등이다. 이러한 조건을 모두 갖춘 사람 중에서 제일 약 15일 전에 마을회의에서 제관을 선정한다.

한번 제관으로 선정되면 1년 이상 계속하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매년 새로 선정하고 있다. 일부지역에서는 정해진 제관이 있거나 고령자 또는 이장이 자동적으로 제관이 되기도 하며, 무인에게 물어서 제관을 정하기도 한다. 또 신대를 잡고 굿을 한 뒤 그 신대가 달려가서 지적하는 사람을 제관으로 삼는 강신사제(降神司祭)도 있다. 제관으로 지목된 사람은 그날부터 각종 금기를 준수하여야 한다.

① 대문 위에 금줄을 늘여서 외인의 출입을 막고 자신의 출입도 금한다.

② 매일 목욕재계하며 성생활을 금한다.

③ 육식 · 술 · 담배 등을 금한다.

④ 살생을 금하고 자기 몸에 작은 상처라도 나지 않도록 특별히 유의한다.

⑤ 부정한 것을 먹거나 보지 않고 부정한 말을 듣거나 발설하지 않는다.

⑥ 불난 곳이나 싸우는 곳에 가지 않는다.

⑦ 남에게 절을 하거나 절을 받아서는 안 된다.

⑧ 조상의 제사에도 참례하지 않는다.

⑨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면서 조용히 제일을 기다린다.

이러한 금기 외에도 제주도의 일부지역에서는 마을 안의 정결한 집에 방을 얻어 제관들이 별도의 금기생활을 하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일반적으로 제의가 끝나면 제관의 금기도 해제되는 것이 상례이지만 지역에 따라서는 다음 제의의 제관이 선정될 때까지 금기가 계속되는 곳도 있다.

의의

마을신앙은 전통사회의 세계관 또는 사회적 특성을 표현하는 것으로 그 의의는 크게 다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마을신앙은 지연을 중심으로 한 생활공동체를 형성하여왔던 촌락사회에 지연강화의 기능을 하였다. 가족이나 씨족 등의 혈연성이 강한 집단에는 제사나 문중제례 등이 있어 혈연을 강화하는 것과 같이 마을신앙은 지연을 강화하는 의례로서 중요한 기능을 하여왔던 것이다. 특히 지연이 약화되어 가는 오늘날에는 고향을 강조하고 ‘향토애’와 ‘국가애’를 살리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다.

둘째, 마을신앙은 사회를 보호한다는 의미가 있다. 지연이라는 것도 사실은 사회를 효율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하나의 원리에 불과하다. 전통사회에서 사회적 통합을 할 수 있는 것은 혈연과 지연이었으며, 마을신앙은 사람들로 하여금 개인이나 가족단위로 분산하는 것이 아니라 지연에 의하여 함께 사는 사람들이라는 느낌을 강화하는 기능을 담당하였다. 마을은 혈족을 포함하여 동료 · 친구 등이 함께 사는 종합적인 장소이기 때문에 종합적인 사회생활의 현장을 강조하고 마을사람들에게 일체감을 주는 기능이 있었다. 이것은 그저 추상화된 것만이 아니고 동회(洞會) 등을 개최하는 실제의 기회가 되기도 하며 정치적 · 행정적 의미의 행사를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셋째, 마을신앙은 일상적인 사실을 성화(聖化)하고 의례화하여 제도적인 권위를 부여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일상적으로 어떤 날을 정하여 일정한 뜻을 기리는 것은 의례를 통하여 보다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가 있다. 특히 마을신앙은 성스러운 날이나 장소, 성스러운 사람의 존재를 상징적으로 설정하여 정형화한다는 의미가 있다. 신성화한다는 것은 단순한 의례화가 아니라 일상적인 것을 제도화한다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이러한 것이 전통이라는 형식을 통하여 지속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넷째, 마을신앙은 마을의 불안을 전체적으로 극복하고자 하는 신앙이다. 이것은 마을신앙의 가장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목적이요 의의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누구나 이러한 심리는 없지 않지만 동제라는 형태를 빌려서 이를 극복하려 하였던 점에 큰 의의가 있다. 마을신앙은 개인신앙이 종합화된 것이 아니라 개인들의 집단적인 심성이 종합화된 것이다. 따라서 마을신앙은 촌락 전체의 공통된 불안이나 불행을 공동의 힘으로 대처하려는 협동의 심리를 그 기초로 삼고 있다.

다섯째, 마을신앙은 지연 중심의 작은 촌락단위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통합원리이다. 따라서 남과 함께 살아야 하는 도시사회에서 이러한 지연을 강조하는 신앙은 통합원리와 모순되거나, 아니면 전체 사회적 통합의 일부 원리로서의 의미밖에 없다. 도시사회에는 인간을 묶는 여러 원리가 있고, 지연중심의 생활공동체원리는 사람들의 사회적 확대를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점에서 마을신앙의 원리는 현대사회와 모순되거나 장해요소로 되어버리는 경향으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의 연구』(손진태, 을유문화사, 1948)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문화재관리국, 1969∼1979)
『부락제당』(이두현·장주근·현용준·최길성, 문화재관리국, 1969)
『한국의 향토신앙』(장주근, 을유문고, 1975)
「무속부락제와 그 민간사고」(김열규, 『인문과학』 22, 연세대학교, 1969)
「한국부락제의 구조와 역할」(최길성, 『한국민속학』 5, 1972)
「동제와 당굿」(이두현, 『사대논총』 17, 서울대학교사범대학,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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