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사(仲思), 호는 황암(篁巖). 경상남도 함안 출생.
1594년에 태릉참봉에 임명되고, 이어 왕자사부(王子師傅)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거절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1599년 송라찰방(松羅察訪)이 되었다가 1601년에 사직하였다. 1602년 다시 시직(侍直)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지 않다가, 그해 겨울에 다시 사부로 임명되어 부임하니, 왕이 크게 기뻐하며 왕자에게 열심히 배울 것을 타이르기까지 하였다. 1605년 형조좌랑에 임명되었고, 곧 군위현감으로 외직을 맡게 되었다.
3년의 임기를 마치고 돌아와 제용감판관(濟用監判官)으로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있다가 다음 해에 죽었다. 조식(曺植)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그때부터 최영경(崔永慶)·하원(河沅)·김면(金沔)·조종도(趙宗道) 등과 교유하였다. 함안의 도림서원(道林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저작으로 『황암집(篁巖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