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성주(星州). 자는 자명(子明). 아버지는 공조참판 배흥립(裵興立)이다.
1630년(인조 8) 무과에 급제, 여러 관직을 거쳐 훈련원첨정(訓練院僉正)에 이르렀으나 1635년 모친상을 당하여 사직, 다음 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경상좌도병마절도사 민영(閔泳)의 군문에서 종군하다가, 민영이 패사하자 그를 대신하여 근왕병을 이끌고 충주에 이르렀으나 호란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군대를 해산하였다.
1638년 숙천부사, 이어 경상좌도우후를 거쳐 양주목사로 있을 때 영국원종공신(寧國原從功臣)에 녹훈되었고, 1645년 공청도병마절도사로 삼았다. 공청병사로 재직 중이던 1646년, 공청도(公淸道: 지금의 충청도) 이산(尼山) 등지에서 안익신(安益信) 등이 주도하여 변란이 일어났고,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였다는 지적에 따라 삭직되었다. 1649년(효종 즉위) 평안도병마절도사로 복직되었고, 1651년(효종 2) 경기도수군절도사·포도대장을 거쳐, 1657년(효종 8) 전라도병마절도사로 재직 중 장수현(長水縣)에서 죽었다. 무인이면서도 양반의 법도를 지키고 행동을 절제하였으며, 스스로 욕심을 버리고 근신하여 여러 고을을 다스리면서도 부정으로 재산을 축적하는 일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