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건물. 1981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불영사 경내 서쪽에 남향하여 세워져 있다. 공포(栱包)는 다포계(多包系)로서 건물의 앞뒤쪽뿐 아니라 양 옆쪽에도 포작(包作)을 짜올렸다.
기단은 자연석을 허튼층쌓기로 지형에 따라 앞쪽은 높고 뒤쪽은 낮게 조성하였다. 주춧돌은 자연석을 다듬지 않은 채 사용하였고, 크기도 일정하지 않으며 이 위에 세운 기둥에는 배흘림을 약하게 두었다. 건물의 바깥쪽은 가운데칸에 세살 4분합문(四分閤門)을 달고, 양쪽 협칸에 벽을 두고, 벽 위쪽에 작은 창을 달았다.
건물 내부에는 바닥에 마루를 깔았고, 출입구를 제외한 벽면에 빙 둘러 불단(佛壇)을 마련하였다. 불단 위에는 중앙에 한 단 높게 본존불(本尊佛)을 모셔놓았으며, 불상의 좌우에는 흙을 구워 만든 16나한상(十六羅漢像)을 배열하였다.
벽체 위의 목조 가구(架構)에는 녹색을 주조로 한 단청이 칠해져 있고, 포(包) 사이의 조그만 벽[包壁]에는 불상 그려져 있다. 건물의 크기에 비해 큰 대들보가 천장을 가로지르고 있고, 그 위로 가운데는 소란반자로 마감한 우물천장을, 둘레는 빗천장을 가설하였다.
귀기둥 위의 귀공포는 맞배지붕 건물에서는 드문 것으로서, 불영사응진전에서 4면에 공포를 두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며, 팔작지붕 건물에서와 달리 처마를 받치는 구실을 하지 않으므로 특징적인 짜임새를 보이고 있다.
공포의 첨차나 쇠서[牛舌] 등에 조선 초기의 제작수법이 남아 있고 짜임새도 치밀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조선 중기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공포를 4면에 모두 배열하고 맞배지붕을 한 것으로 보아 처음 지었을 때에는 팔작지붕 건물이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이와 같은 건물로는 충청남도 청양의 장곡사 하 대웅전(보물, 1963년 지정)과 서산의 개심사대웅보전(보물, 1963년 지정)을 들 수 있다.
1984년에 건물을 해체 보수할 때 종도리(宗道里) 밑 장여 안에서 중수상량문이 나왔고, 또 종도리 밑에서 1716년(숙종 42)에 먹으로 쓴 묵서명(墨書銘)이 발견되어 이 건물이 1578년(선조 11) 이후 다섯 차례에 걸쳐 보수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한편, 상량문 앞머리에서 건물의 이름을 영산전이라고 적고 있어서 원래는 영산전이던 건물을 후대에 응진전으로 바꾼 것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