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3년(숙종 19)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정신보(鄭臣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정인경(鄭仁卿) · 유방택(柳方澤) · 윤황(尹璜) · 유백유(柳伯濡) · 유백순(柳伯淳) · 유윤(柳潤) · 김적(金積) · 김위재(金偉材)를 추가 배향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다가, 1910년 유림 유양목(柳瀁穆) 등에 의하여 복원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중앙의 신문(神門)과 양 옆 협문(夾門)으로 된 내삼문(內三門), 각 3칸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 외문(外門) 등이 있다.
사우에는 서편에서부터 정신보 · 정인경 · 유방택 · 윤황 · 유백유 · 유박순 · 유윤 · 김적 · 김위재의 순으로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재실은 제반 행사 때 유림들의 회합장소 및 제향시 제관들의 숙소와 유생의 강학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매년 음력 2월과 8월 마지막 정일(丁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은 7변(籩) 7두(豆)이다. 1984년 충청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재산으로는 대지 500평, 전답 1만4000평, 임야 2만4000평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