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곳에 묘소가 있게 된 연유는 이괄(李适)의 난으로 인조가 공주로 파천한 적이 있었는데, 훗날 숭선군이 공주 산천 구경을 한 뒤 서울에 돌아가서도 항상 공주를 그리워하였다.
임종시 생전에 그립던 공주이니 사후에라도 가고 싶다고 유언하여 이곳에 묻혔다고 한다. 봉분은 높이 2m, 둘레 18.6m 규모로 좌·우·후의 3면을 담으로 둘리고 상석과 봉분 사이에 비석을 세웠으며, 봉분 중앙에 장명등 1기와 문무인석 2기, 망주석 2기를 시립시켜 놓았다.
봉분 주위의 하단에는 8개의 화강석 석재로 호석을 둥글게 돌렸다. 봉분 앞 비석은 수성암의 규형비로 방형의 대석을 갖추고 있다.
전면에 ‘王子崇善君贈諡孝敬公諱澂 夫人永豊申氏附左(왕자숭선군증시효경공휘징 부인영풍신씨부좌)’라 하였고, 뒷면에 ‘崇禎紀元後 百二十三年 丙戌八月日立(숭정기원후 백이십삼년 병술팔월일립)’이라하여, 묘가 숭선군과 부인의 합장묘임과 연대를 알려주고 있다.
비의 기년으로 보아 1766년(영조 42)에 조성되었고, 현재의 위치에 묘역을 조성한 것은 후대의 일로 보인다. 전언에 의하면 본래 측근들이 숭선군의 유언에 따라 이곳에 묘역을 조성하기는 하였지만 왕족의 묘가 도성에서 일정 거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법제 때문에 안치되지 못하다가 후손들에 의해 이곳에 조성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