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윤보(潤甫), 호는 규봉(圭峰). 심의겸(沈義謙)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심암(沈岩)이고, 아버지는 진사 심대형(沈大亨)이며, 어머니는 한중겸(韓重謙)의 딸이다.
1612년(광해군 4)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인조를 공주에 호종하여 내시교관이 되고 1626년 헌릉참봉(獻陵參奉)을 지냈다. 1627년 정묘호란 때는 강화도로 왕을 호종하여 조지서별제(造紙署別提)·의금부도사를 역임하였다. 그해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사섬시직장(司贍寺直長)에 임명되었다.
그 뒤 지평(持平)·정언(正言)·교리(校理)를 거쳐 1633년에는 호란으로 파괴된 창덕궁의 보수공사를 도청(都廳)이 되어 총괄하였고 공사가 끝나자 통정대부로 승진하였다. 같은 해 당시 현으로 강등되어 다스리기 어려운 곳으로 알려져 있던 광산(光山)에 현감으로 부임하였다.
재판을 공정히 하고 선정을 베풀어 현을 주로 승격시키고 그곳의 목사가 되었다. 1635년 경상도관찰사가 되었을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휘하 군대를 이끌고 쌍령(雙嶺)에서 싸웠으나 패하였다. 문경에서 재기를 꾀하던 중 화의가 성립되자, 패전의 책임을 지고 전라도 임피(臨陂)에 유배당하였다.
1638년 사면되어 제주목사로 부임하여 백성을 덕으로 잘 다스린 업적을 인정받아 비변사당상이 되었다. 이어 한성부판윤·승지·대사간 등을 거쳐 황해도·평안도의 순찰사, 평안도·경기도의 관찰사를 역임한 뒤 함경도관찰사로서 임지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