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의 유명한 문장가인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의 묘소로,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에 있다. 1978년 9월 22일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제주 양씨 문중에서 관리해 오고 있다.
양응정(梁應鼎, 1519∼1581)의 본관은 제주이고, 자는 공섭(公燮)이며, 홍문관교리인 학포(學圃) 양팽손(梁彭孫, 1488∼1545)의 셋째 아들로 능성에서 태어났다. 1553년(명종 8)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의 정자와 부수찬, 예문관봉교·홍문관부제학, 우승지·대사성·대사간, 전라도사(全羅都事)·이조참의 등을 지냈다.
문하생으로 정철(鄭澈)·백광훈(白光勳)·최경창(崔慶昌) 등이 유명하다. 나주 박산(현재 광주광역시 광산구)에서 후진을 양성했다. 1842년(헌종 8) 9대손인 양찬영(梁纘永)이 주도하여 문집인『송천집(松川集)』을 간행하였다.
묘역은 약 6,000평이다. 양응정과 함께 임진왜란 때 순절한 그의 아들인 양산룡(梁山龍)·양산숙(梁山璹)·양산수(梁山岫), 손자인 양만용(梁曼容)의 묘가 함께 있다.
산아래에 제각이 있고 중턱에 묘소가 있다. 묘 앞에는 민병승(閔丙承)이 글을 지은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묘역은 봉분 세 개가 나란히 위아래로 있으며, 묘비와 석물은 조형이 섬세한데, 특히 양응정 묘의 석물들은 조각이 더욱 정밀하여 당시 무덤 양식을 엿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