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2월 7일에 전라남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유적은 영산강 하류에 있는 내동리 서쪽의 구릉 중간부에 위치해 있다. 여기에는 모두 7기의 고분이 있었지만, 제2·3·4·6호분은 이미 파괴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유적으로서 의미 있는 것은 제1·5·7호분이다. 제7호분은 1960년에 국립중앙박물관의 김원룡 발굴팀이, 제1호분과 제5호분은 1967년에 경희대학교박물관팀이 각각 발굴조사하였다. 이는 한국학자에 의한 최초의 독무덤 발굴이었다.
제1호분은 2개의 항아리를 이음식으로 만든 독무덤으로 개간에 의해 파괴되고 하부의 일부만이 남아 있었다. 독널의 주변에서 큰항아리[大壺]·짧은목항아리[短頸壺]등이 출토되었다.
제5호분은 한 봉토(封土) 내에 3개의 이음독[合口式甕棺]과 하나의 파괴된 독무덤으로 이루어졌다. 1호관은 총길이 3m, 너비 1.27m인 대형 독널로 그 안에서 사람뼈, 긴목항아리[長頸壺]및 길이 65㎝의 철검(鐵劍) 한 자루가 출토되었다.
2호관 역시 대형 독널로, 안에서는 곱은옥[曲玉]과 대롱옥[管玉]이 발견되었고, 주변에서는 많은 토기가 채집되었다. 제7호분은 한 봉토 내에 대형 및 소형의 독널 6개가 묻혀 있었다. 독널은 2∼3개를 맞붙여 만든 이음독이다.
이 독무덤들에서는 긴목항아리·뚜껑접시[蓋杯]·둥근바닥항아리[圓底壺]·납작바닥항아리[平底壺]·짧은목항아리[短頸壺]·벽옥제대롱옥·유리제구슬[球玉]·토제가락바퀴[土製紡錘車]·쇠못[鐵釘]등이 출토되었다. 이 밖에 제2·3·4·6호분은 이미 파괴된 독무덤이다.
이 지역 독무덤의 특색은 1개의 봉토 안에 여러 개의 독널이 묻혀 있어 가족묘적인 성격을 가진 점이다. 독널은 2∼3개의 항아리를 맞붙여 만든 이음식으로 소형 독널과 대형 독널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독널은 처음에는 일상에 쓰이는 항아리로 만든 대용독널[代用甕棺]이 사용되다가 뒤에는 널로 특별히 만든 대형의 전용독널[專用甕棺]이 사용되었다.
내동리쌍무덤의 조성시기는 사용된 독널과 출토된 토기로 보아서 4∼5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이 독무덤은 제5호분을 제외한 모든 무덤들이 파괴·교란된 것이기 때문에 이들 독무덤의 성격이나 구조를 밝히는 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그러나 이 독무덤에 대한 조사는 한국학자들에 의한 영산강유역의 독무덤에 대한 발굴조사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