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장동사는 전몽성을 추모하기 위하여 1677년(숙종 3)에 장천리 장동마을에 창건한 사우다. 1706년(숙종 32)에 중수하면서 전몽진을 추배하고, 뒤이어 1836년(헌종 2)에 전몽태(1571∼?)를 또 추배하였다. 1868년(고종 5)에 서원훼철령으로 헐린 뒤 1946년에 현 소재지에 옮겨 지었다.
전몽성은 임진왜란시 초토사 고경명(高敬命)의 막하에서 금산의 적을 토벌하였으며, 함평현감을 지냈다. 정유재란이 발생하자 동생인 전몽진과 함께 창의하여 율치와 월출산 등지에서 싸우다 해암포(海巖浦)에서 순절했다.
전몽태는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이 발생하자 외조카인 김완(1577∼1635)을 도와 공을 세워 진무원종공신에 녹훈되었다. 사우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맞배지붕이며, 삼문과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관련자료로 『천안전씨문안(天安全氏門案)』1책과 『장동사청금록(長洞祠靑衿錄)』9책 등이 소장되어 있다. 관련유적으로 1887년 건립한 전씨충효문(전라남도기념물, 1985년 지정), 전몽성과 전몽태의 신도비를 비롯해 수래정(修來亭), 재실인 원경재(遠景齋) 등이 인근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