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빈우(賓羽), 호는 농재(聾齋). 오수천(吳壽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경상좌도병마절도사 오정방(吳定邦)이고, 아버지는 종친부전부(宗親府典簿) 오사겸(吳士謙)이다. 어머니는 전주이씨로, 한성서윤 이집중(李執中)의 딸이다.
1632년(인조 10)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도원찰방에 제수된 뒤, 원수종사관(元帥從事官), 평안도도사, 호조·공조의 정랑을 거쳐 지평(持平)·장령(掌令)·문학(文學) 등을 지냈다. 1644년에는 정조사(正朝使)의 서장관으로 참가하였고, 진주목사를 거쳐 1650년(효종 1) 강계부사가 되어 잠상(潛商: 은밀히 장사하는 밀무역 상인)들을 없애고 많은 치적을 쌓았다.
그러나 인조의 유모[乳媼] 아들인 이신우(李信友)가 왕제인 인평대군의 문서를 가지고 와서 강계부 삼화(蔘貨)의 이권을 빼앗으려 하므로, 그 문서를 불태우고 이신우를 축출한 일이 화가 되어 아산에 유배, 이어 연안에 이배되었다가 이듬해에 풀려나왔다.
1662년(현종 3) 오위장에 등용되고 첨지중추부사·공조참의를 역임하였다. 1681년(숙종 7) 가선대부(嘉善大夫)에 승품하여 동지중추부사 겸총관이 되었고, 1684년에 인조의 계비인 장렬왕후(莊烈王后)의 회갑을 계기로 자헌대부에 지중추부사로 승진, 기로소에 들어갔다. 시호는 숙헌(肅憲)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