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회경(會卿), 호는 빙헌(氷軒). 이조판서 이명한(李明漢)의 아들이다. 척화신 공조참의 나만갑(羅萬甲)의 딸과 혼인하였다.
1630년(인조 8) 진사시에 합격하고, 1636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평소 효도가 극진하였는데, 이해 관직에 나가기 전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어머니를 모시고 강화도로 피난하였다. 이듬해 강화도가 적에게 함락되자 자신은 적에게 잡히고 아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옆의 섬으로 피난하였다.
그 뒤 풀려나왔으나 아버지와 형제에게 글을 남겨 이별하고 여러 차례 적진에 들어가 어머니를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적에게 피살되었다. 아내 나씨도 이 소식을 듣고 상심한 끝에 죽었다. 인조의 명으로 효자정문이 세워졌으며, 1671년(현종 12) 승지 이단하(李端夏)의 건의로 수찬을 추증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