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덕여(德輿). 이집(李集)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지직(李之直)이다. 아버지는 우의정 이인손(李仁孫)이며, 어머니는 노신(盧信)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경사(經史)를 읽으면 대의를 통하였다. 1444년(세종 26)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집현전에 발탁되었고, 1447년 중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부수찬에 임명되었다. 1448년에는 세손강서원(世孫講書院)이 새로 설치되자 우찬독(右贊讀)이 되었다.
1450년(문종 즉위년) 문종이 즉위하자 경연사경(經筵司經)을 지내고, 이듬해 대제학 정인지(鄭麟趾)의 추천으로 사가독서(賜暇讀書: 문흥을 일으키기 위하여 유능한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만 전념케 하던 제도)를 하였다.
1455년(세조 1) 수양대군(首陽大君)이 정권을 빼앗아 즉위하자 검상이 되었고, 즉위에 즈음하여 좌익공신(佐翼功臣) 3등에 녹훈되고, 이조참의에 임명되었다. 왕세자가 책봉되었을 때 보도(輔導)의 책임을 부여받았다. 1458년에 동부승지가 되고, 이어 이조참판을 거쳐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1460년 북정(北征) 때에는 기무를 관장하였다. 신숙주(申叔舟)와 함께 『국조보감(國朝寶鑑)』을 수찬하였으며, 『치평요람(治平要覽)』·『의방유취(醫方類聚)』 등을 교정하여 간행하였다. 1461년에는 왕명으로 신숙주와 함께 『북정록(北征錄)』을 찬진하였다. 시호는 문경(文景)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