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이로(耳老), 호는 정재(靜齋). 공조참의 이윤우(李潤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수찬 이도장(李道長)이다. 아버지는 이조판서 이원정(李元禎)이며, 어머니는 벽진이씨(碧珍李氏)로 좌부승지 이언영(李彦英)의 딸이다. 허목(許穆)의 문인이다.
1666년(현종 7) 생원시에 합격하고, 1670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성균관학유가 되고, 이어 봉상시봉사·승정원주서를 거쳐 홍주목사로 나갔다. 경신대출척으로 파직되어 아버지 이원정의 유배지 초산에 따라갔다.
1683년(숙종 9) 다시 복관되어 우승지·전라도관찰사·부제학·이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경상도관찰사로 있을 때 진정(賑政: 재해를 구제하는 정책)에 힘쓰고 선정을 베풀어, 도민들이 그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영사비(永思碑)를 세웠다.
외직에 있을 때에 견문한 사실과 군정(軍政)·호포(戶布)·시재(試才) 등의 시폐를 들어 시정책을 강구한 상소를 올렸으며, 충주의 관둔전(官屯田)을 공주에 넘기는 것을 극렬 반대하였다.
「서전차의(書傳箚疑)」·「기뇌홍(記雷虹)」 등 많은 잡저를 남겼고, 저서로는 『정재문집』 8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