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휴(李用休)는 조선 후기 『탄만집』, 『혜환시초』, 『혜환잡저』 등을 저술한 문인이다. 이침(李沉)의 아들이며, 이잠(李潛)의 조카이며, 이가환(李家煥)의 아버지이다. 어려서 서학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작은 아버지 이익(李瀷)의 문하에서 배웠다. 일찍이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이용휴는 개방적이고 박학적인 태도로 양명학뿐 아니라 도가와 불교 등 다양한 사유를 흡수하였다. 그는 당시 새롭게 유입되었던 서학의 영향권에 위치한 인물로, 이러한 사상적 사유는 그의 작품 곳곳에서 나타난다.
이용휴는 어려서 서학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작은 아버지 이익(李瀷)의 문하에서 배웠다. 18세기 당시에 유입되던 새로운 사유에 개방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으며, 그의 주위 인물들 중 천주교를 믿는 인물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서학의 영향권 내에 있었다. 이러한 사상적 사유는 그의 작품 「증정재중(贈鄭在中)」 등에 나타난다. 「증정재중」에서 이용휴는 현상 세계의 거짓과 불완전함을 경계하고 내적 수양을 강조하는 한역 서학서의 핵심 논의를 원용하여, 외면의 눈을 실명하는 것이 내면의 눈을 회복하기에 좋은 기회임을 말하였다.
또한 이용휴는 개방적이고 박학적인 태도로 양명학(陽明學)뿐 아니라, 도가와 불교 등 다양한 사유를 흡수하였다.
그는 실학의 학맥을 따라 천문 · 지리 · 병농 등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학문에 조예가 깊었다. 그의 작품은 이러한 사상에 입각한 것이 많다. 특히 하층민 입장에서 그들에 관한 전(傳)을 썼다. '해서개자(海西丐者)'라는 한문소설에서 거지와 묻고 답하는 내용을 통해 그 거지가 순진하고 거짓 없는 마음씨를 가졌다고 한데 이어서, 거친 들판, 옛 산협에 숨은 선비 또는 농촌에서 일하는 이들 가운데에 참된 사람이 있을 것이라 하였다.
이용휴가 쓴 전의 양식은 정통의 전 양식과는 성격이 달랐다. 「해서개자」를 통해 그의 문학관은 영달을 위한 수단이 아닌 문학 그 자체의 진실을 추구하자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주자학적 권위와 구속을 부정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사상적 고민이 깊지 않은 한계를 지녔던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문인의 사명과 창작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했고, 30여 년을 문장가로서 남인계의 문권을 잡았다.
작품으로는 신광수(申光洙)가 연천 고을에 사또로 부임할 때 지어 준 「송신사군광수지임연천(送申使君光洙之任漣川)」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탄만집(𢾡𢿜集)』 · 『혜환시초(惠寰詩抄)』 등과 『혜환잡저(惠寰雜著)』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