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소악부」는 조선 후기에 이유승이 지은 악부시이다. 이유승과 원세순이 편찬한 『삼가악부』에 모두 10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전한다. 「속소악부」의 형식은 대부분 칠언 절구로, 여타의 소악부와 마찬가지로 늙음에 대한 탄식 · 사랑과 이별 · 전원생활의 기쁨 등을 제재로 삼고 있다.
이유승(李裕承, 1835~1906)은 호가 동오(東梧)이다. 1864년(고종 1)에 30세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여, 1866년(고종 3)에 정3품직인 홍문관수찬(弘文館修撰)이 되었다. 이후 성균관대사성(成均館大司成) · 이조참판(吏曹參判) · 우찬성(右贊成) 등 여러 관직을 두루 지냈다.
「속소악부」는 『삼가악부(三家樂府)』에 10편이 수록되어 전한다.
『삼가악부』는 이유승과 원세순(元世洵) 두 작가가 시조(時調)의 전승(傳承)이라는 뚜렷한 목적의식 아래 편찬한 책으로, 신위(申緯) · 이유승 · 원세순 세 사람의 소악부(小樂府)를 모아 놓은 책이다. 이유승은 『삼가악부』의 공저자(共著者)이기도 하면서 『삼가악부』를 전반적으로 감수(監修)하는 역할을 했다.
신위의 「소악부(小樂府)」, 원세순의 「속악부인(續樂府引)」, 이유승의 「속소악부」와 「속소악부 병서(續小樂府幷書)」로 구성되어 있다.
『삼가악부』는 1책의 필사본(筆寫本)으로, 일본 경도대학 가와이문고[河合文庫] 소장본이 현재까지 전해지는 유일본(唯一本)이다.
「속소악부」는 「백구맹(白鷗盟)」 · 「촉혼원(蜀魂怨)」 · 「노장지(老將至)」 · 「봉래산옥진(蓬萊山玉眞)」 · 「여배취흥(驪背醉興)」 · 「영작보희(靈鵲報喜)」 · 「청춘거(靑春去)」 · 「백발가(白髮歌)」 · 「황위기(黃爲期)」 · 「장상사(長相思)」의 10편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삼가악부』에 함께 수록되어 있는 신위의 「소악부」가 전체 40수 중에 31수만 수록된 경우와 같이, 「속소악부」의 경우도 편찬자가 소악부 여러 편 가운데에 10수만 가려 뽑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유승은 「속소악부 병서」에서 고려시대 이래로 많은 재자가인(才子佳人)들이 흥을 부쳐 마음속의 감정과 생각을 묘사하고, 마음에 느껴 탄식하는 바를 부른 많은 노래가 우리말과 글로 불리어졌다는 이유로 버려진 채 정리되지 않았던 일을 안타까워하였다.
고려 말 이제현(李齊賢)이 처음으로 소악부를 지어 우리 노래의 정리를 시도했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아무도 이를 뒤잇는 작품을 짓지 않다가, 신위가 소악부를 지어 이제현의 뜻을 이었다고 한다. 그 뒤를 이어서 우리나라 가요를 보전 · 전승하겠다는 분명한 의도에서 「속소악부」를 창작했음을 밝히고 있다.
「속소악부」의 형식은 칠언 절구가 대부분이다. 여타의 소악부와 마찬가지로 늙음에 대한 탄식, 사랑과 이별, 전원생활의 기쁨 등을 제재로 삼고 있다. 조선 후기 소악부 연구에 있어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