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수(申光洙, 1712~1775)의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성연(聖淵), 호는 석북(石北)이다. 39세에 진사에 합격하였으며 서화(書畫)에 뛰어났다.
108수로 구성되어 있다. 일정한 기준 하에 정교하게 배치하지 않고 뒤로 갈수록 시간적인 구획이나 장면의 구획이 모호해져 연작시를 구성하는 선명한 구조나 기준이 잘 드러나지 않아 비교적 산만하다. 그러나 전편에 걸쳐 ‘기녀’를 등장시켜 각 장면을 연결하는 연작시 구성의 기본 장치를 갖추고 있다.
‘관서백사시행락사(關西伯四時行樂詞)’ · ‘백팔악부(百八樂府)’ · ‘백팔진주(百八眞珠)’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작품은 1774년(영조 50)에 번암 채제공(蔡濟恭, 1720~1799)의 평안도 관찰사 부임을 축하하기 위해 지어졌으며, 채제공이 평안도 관찰사로 부임하는 장면부터 채제공이 임기를 마치고 평양을 떠나는 순간까지의 장면을 그리고 있다.
채제공이 평안도 관찰사로 부임하는 성대한 행차 과정, 새로운 관찰사의 부임 환영 행사, 평양 기녀(妓女)들의 화려한 연회와 풍류 장면을 그려내어 시 전편에서 평양의 향락적인 이미지와 함께 유흥적인 분위기를 담아냈다.
이 작품에서의 ‘기녀’나 ‘연회’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유흥성을 넘어, 18세기 평양의 이미지를 대표하거나 평양 산천의 수려한 모습을 비유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평양의 화려하고 풍요로운 모습을 보여 주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관리들이 평양에서 즐거운 잔치에 몰두한 나머지 본연의 직무인 현실 문제를 종종 잊어버린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백성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다룬 교훈적인 여타의 악부시와 달리, 평양의 이미지를 대표적으로 드러내는 기녀를 작품 전면에 내세워 당시 평양의 세태와 현실의 모습을 형상화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