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바탕에 채색. 1975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운룡은 1575년(선조 18) 무과에 급제하고 1592년 임진왜란 때 옥포만호(玉浦萬戶)로서 원균(元均)의 휘하에 있다가, 그 뒤 이순신(李舜臣)의 막하로 들어가 많은 해전에서 공을 세워 1604년 선무공신(宣武功臣) 3등에 책훈되고, 식성군(息城君)에 봉해졌다.
이 영정은 1975년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뒤 1977년 8월 19일 영정의 원본을 도난당했다. 현재는 작은 흑백 사진과 1950년대에 원본을 모사한 이모본(移模本) 및 원본 도난 시 그림의 주요 부분만 칼로 오려가면서 남은 사방 약 5㎝ 남짓의 비단조각만 전하고 있다. 그래서 자세한 내용을 파악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모본을 토대로 대체적인 모습을 살펴보면, 도상은 반우향의 전신교의좌상으로서 단호 흉배(單虎胸背)와 학정 금대(鶴頂金帶)를 착용하고 바닥에는 화려한 채전(彩氈)을 깔고 있다.
낮은 사모(紗帽)와 사모 날개의 큼직한 운문(雲文) 묘사, 단령(團領 : 깃이 둥근 공복)의 구조와 운문의 평면적인 처리 그리고 뒤로 접혀 올라간 단령 뒷자락을 삼각형처럼 도식적으로 묘사한 것은 17세기 초 전형적인 공신도상(功臣圖像)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1604년경의 선무공신상이나 호성공신상은 대체로 단령의 옆 자락 트임 사이로 바지의 무릎과 정강이 부분을 묘사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 상은 바지 표현이 전혀 없이 단령의 옷자락만 표현되어 있어 전형적인 도상과는 다소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영정은 본래 충청북도 청주의 상충사(尙忠祠)에 봉안되었다. 그러나 사당이 훼철되자 후손이 청도군 풍각면 흑석리에 흑석영당(黑石影堂)을 지어 봉안하였었다. 현재는 청도읍 종손가에 소장되어 있다.
1604년 문신 이운룡을 선무공신 3등에 책록한 교서와 공신교서가 국립진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199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초상화와 더불어 공신교서와 관계문서는 조선시대 공신을 비롯한 임진왜란사 그리고, 이운룡의 전기자료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