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함평(咸平). 자는 성백(誠伯), 호는 장포(長浦). 이세번(李世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이윤관(李允寬)이고, 아버지는 우윤 이관(李瓘)이며, 어머니는 이구년(李龜年)의 딸이다.
1584년(선조 1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병조정랑·세자시강원사서·승지·한성부좌윤·대사간 등을 역임하고, 1603년 이조참판 재임시에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선조 말년에 북인이 대북·소북으로 나뉘어 정권쟁탈이 치열할 때 그는 영상 유영경(柳永慶)의 소북파에 가담, 상소문을 올려 군부(君父)의 지친을 이간하려는 정인홍(鄭仁弘)의 흉모는 이이첨(李爾瞻) 등의 사주에 의한 것이라 하여 대북파인 정인홍을 영변, 이이첨을 갑산에 유배시키고 세자 광해군을 폐위시키고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옹립하려 하였다.
그러나 1608년 선조가 갑자기 죽고 광해군이 즉위하여 대북파가 집권함에 따라 이듬해 그는 삭직되어 거제도에 유배되었고, 그곳에서 유유자적 독서로 세월을 보냈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14년 만에 풀려나 초가에서 청빈한 생활을 하였으므로 지나가는 사람들도 그 집이 재신(宰臣)을 지낸 사람의 집인 줄 몰랐다. 인조반정이 있었던 그 해 겨울, 공조참판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촌로들과 산수를 즐기며 일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