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전상의의 본관은 천안(天安)이며, 지금의 광주광역시 서구 구동에서 용(蓉)의 아들로 태어났다. 1593년(선조 36) 29세 때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으로 벼슬길에 나아갔다. 1617년(광해군 9) 회답사 겸 쇄환사(回答使兼刷還使)가 되어 오윤겸(吳允謙)을 수행하고 일본에 건너가 임진·정유 왜란 때 끌려간 동포를 귀국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1627년(인조 5) 구성부사로 있을 때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안주성싸움에서 분전하다 순절하였다. 병조판서에 추증되고 광주 무등산에 예장하였다. 안주의 충민사(忠愍祠), 광주의 경렬사(景烈祠) 등에 배향되었다. 1684년에는 명정되어 광주 화산 마을에 충신정려를 세웠다.
1979년 신도비를 세웠는데 비문은 홍직필(洪直弼)이 쓴 것이다. 1985년에 충민사를 지었다. 묘소에는 부인과 합장되어 있고, 직경은 4.9m이며, 주위에 호석(護石)이 둘러져 있다. 묘 앞에는 1857년(철종 8)에 세운 묘비가 있다. 관련 유물은 갑옷·투구·활·검 등의 문구류와 교지(敎旨)·완문(完文)·완약(完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