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옥천(沃川). 자는 자수(子綬), 호는 망일당(望日堂) · 설월당(雪月堂). 상장군(上將軍) 전희철(全希哲)의 5세손으로, 할아버지는 군자감직장 전개(全漑)이고, 아버지는 봉사(奉事) 전뇌(全磊)이며, 어머니는 진양 정씨(晉陽鄭氏)로 군수 정호인(鄭好仁)의 딸이자 대제학 정척(鄭陟)의 현손녀이다.
나면서부터 자품이 장중하고 정신이 명수(明粹)하였으며 총명 재기가 특출하였다. 1624년(인조 2)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중앙관직으로 정자(正字)를 거쳐, 박사 · 전적, 형조 · 예조 좌랑, 형조정랑, 전라도사, 성균관직강, 예조정랑, 강진현감 병조좌랑 사헌부 지평 사간원 정언 등을 지냈다.
사간원 정언으로 있을 때 권신 김자점(金自點)의 죄를 탄핵하다가 북변의 외직으로 쫓겨났다. 외직으로는 함경도사 봉산현감 · 고산찰방 · 봉산군수 · 충청도사 · 장흥부사 · 선산부사 등을 지냈다.
그는 지방에 부임한 곳마다 공덕비가 세워졌는데, 특히 선산부사로 있을 때 선정을 베풀어 청덕비(淸德碑)가 세워졌다. 서예에도 뛰어났다. 그의 저서로 『설월당문집』과 유고(遺稿)가 전한다. 경북 영주의 방산서원(方山書院)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