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경로(景老), 호는 사암(思菴). 증호조참판 정비(鄭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호조판서 정원운(鄭元耘)이고, 아버지는 예문관대교 정전(鄭荃)이며, 어머니는 거창신씨(居昌愼氏)로 증 이조판서 신극정(愼克正)의 딸이다.
1531년(중종 26) 사마시에 합격하고 1532년 별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 관직이 예빈시주부를 거쳐 지평(持平)·장령(掌令)·부교리(副校理)·집의(執義)·직제학에 이르렀다. 1542년 감찰로서 정조사(正朝使)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다.
그 이듬해 부제학이 되고, 우승지 등을 거쳐 명종 때 황해도관찰사·형조참의·병조참의·경기도관찰사·호조참판·한성부우윤·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선조 때 형조참판·한성부판윤·호조판서를 지내고, 1572년 우의정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고 부임하지 않았다.
청백리(淸白吏)로서, 권신 윤원형(尹元衡)이 자신의 정처를 내쫓고 애첩 정난정(鄭蘭貞)으로 정경부인(貞敬夫人: 외명부 종1품)을 삼은 데 대한 사실 여부를 밝히라는 왕명을 받들고 조사하던 중 윤원형이 이를 알고 뇌물로 이를 무마하려 하자 완강히 거절하여 사람들이 후사(後事)를 두려워한 일도 있었다.
선조 초에 육조의 장을 추천하라는 왕명이 있자 모두가 서슴없이 그를 추천할 만큼 명망이 있었다. 시호는 충정(忠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