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위도(衛道), 호는 송죽당(松竹堂). 증별제 정사(鄭獅)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좌승지 정경윤(鄭景倫)이고, 아버지는 첨정 정응택(鄭應澤)이며, 어머니는 사정(司正) 이인수(李獜壽)의 딸이다.
1606년(선조 39) 진사가 되고, 1611년(광해군 3) 별시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사간원정언·이조좌랑을 거쳐 홍문관교리가 되었다. 1612년 영창대군(永昌大君)을 무고하여 강화로 몰아냈던 대북의 영수 이이첨(李爾瞻)으로부터 박승종(朴承宗)과 유희분(柳希奮)의 심복이라 하여 미움을 받았다.
1616년 이이첨의 사주를 받은 한찬남(韓纘男)의 상변사건(上變事件, 海州獄事)에 연루되어 진도로 유배되었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풀려나와 죽산부사로 있던 중 이괄(李适)의 난 평정에 공이 컸으며, 1628년(인조 6) 회답사(回答使)로 심양(瀋陽)에 다녀와 충청감사를 지냈다. 저서로는 『송죽당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