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서망(西望). 호는 취전(醉全). 정휴복(鄭休復)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정호(鄭灝)이고, 아버지는 순천부사 정양필(鄭良弼)이며, 어머니는 이양(李揚)의 딸이다.
1639년(인조 17) 생원진사시, 1660년(현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67년(현종 8)에 지평이 되었으며, 정언·장령·헌납·사서 등의 관직과 차왜(差倭) 귤성진(橘成陳)을 접대하기 위한 접위관(接慰官)을 지냈다. 1669년에는 복선군(福善君) 이구(李灸) 등과 함께 서장관으로 청을 다녀오기도 하였다. 그는 경제문제에 관심이 많아 진휼정책의 필요성과 효과적 수행, 전마(戰馬)의 방목, 청에서 수입되는 곡식의 가격책정 등에 관련된 여러 개혁안을 내놓기도 하였다.